배 통관 거부는 미의 "자몽 보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농민들은 더 이상 한· 미 통상마찰에 볼모가 될 수 없다. 농산물 수입개방 조치로 마땅한 대체 작물재배안도 뒤따르지 않아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특히 특용작물과 원예농가들은 걱정이 태산같다.
이런 와중에 우리 나라의 배 (이) 수출이 미국 측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 미연방식품의약국 (FDA) 이 지난 12일 한국산 배에서 인체에 해로운 다코닐 농약성분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우리 나라 배에 대해 통관거부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통관 불허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다.
왜냐하면 미 FDA측은 한국산 배에서 다코닐 농약성분이 0.023∼0.036PPM 검출됐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지난 87년 수출 때 0.04PPM 검출됐을 때에도 아무 탈없이 통관, 수출된 점이다,
뿐만 아니라 미 FDA측에 의한 87년 수출통관 때보다 농약성분이 분명 적게 검출됐고 경기도 안성 배 재배단지는 지난 9월부터 11월15일까지 미 농무부 식물검역관과 우리 나라 식물검역관· 농수산물검사소 직원들이 참여, 한· 미 합동검역 및 수출검사 때 전량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FDA측이 돌연 통관거부 조치를 내려 수출 길을 막은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얼마 전 미국산 자몽에서 발암성분 알라가 검출돼 국내에서 불매운동을 벌인데 대한 보복조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주한 미 대사관 측은 이에 대해 자몽시비와 관련한 보복이 아니며 통관관계는 미 FDA 소관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통상관례에 비추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통관· 수출되다가, 그것도 한· 미 합동검역 및 수출검사 때에도 합격한 우리 나라 배가 어째서 갑자기 통관거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자몽 불매운동에 뒤이은 한국산 배에 대한 통관거부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 이어서 더욱 그렇다.
미국의 이 같은 처사는 양담배수입개방압력으로 우리잎담배 경작농민들을 울리고 포도· 바나나· 귤 등 원예농가들까지 시름에 잠겨있는 시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따른 농산물수입개방조치로 우리농민들은 한· 미 통상의 볼모가 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다 배까지 통관거부압력을 계속한다면 농민들은 언제까지 밀리기만 할 수 없다. 미국 측 농약시비로 일본· 대만 등의 수출까지 주춤해 배 생산 농가들이 시름에 빠져 있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산 배의 통관거부조치에 대해 전후관계를 따져 농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만약의 경우가 없도록 적극 대처해야한다.
1천60t의 올 수출계획물량에 한치의 흠이라도 생긴다면 가뜩이나 농정에 불만이 많은 농민들은 자몽의 보복에 또 하나의 볼모가 됐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실의의 골이 더욱 깊게 패어 생존권보호 파문이 확산될 것이다.
이정춘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4동 15통2반 가능연립 다동 102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