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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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스크바 대학에서 토론회가 벌어졌다. 교수가 물었다. 『자본주의는 지금 어느 단계에 가 있습니까.』 학생들은 대답했다. 『벼랑끝에 서 있습니다.』 교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사회주의는 어디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번엔 학생들이 모두 합창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자본주의보다 한발 앞서 있습니다.』
요즘 동구에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군중시위는 정말 벼랑끝에서도 한발 더 앞서간 사회주의의 현실을 실감할수 있게 한다.
최근 미국의 카터정권시절 대통령특별보좌관을 지낸 Z브레진스키는 때맞추어 『거대한 실패』 (The Grand Failure) 라는 책을 내놓았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탄생과 사망」 이라는 부제는 거대한 실패가 무슨 의미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스탈린이 연출한 공포정치의 희생자를 4천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실험을 위해 희생당한 인명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무려 5천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레닌, 스탈린, 브레즈네프 시대가 남긴 유산은 세가지. 하나는 개인적인 부패, 또 하나는 사회의 정체, 그리고 경제의 낙후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1970년이후 소련의 공업제품은 수출경쟁력 제로, 소련인의 평균수명은 세계 50위, 상수도 보급률은 전가구의 3분의1로 나타났다.
공산주의의 낙조를 실감하게 하는 또 다른 징조는 바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볼 수 있다. 극도의 사회혼란, 광범위한 반미감정, 게바라적 혁명사상, 해방신학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공산주의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선거에서 나타난 공산주의의 지지율은 가장 높은 때가 5%정도이며 그나마 해마다 감소추세에 있어 지금은 3%도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향후의 공산주의는 어떻게 될까. 브레진스키는 몇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단계를 밟아 복수정당제와 자유경제체제로 이행하는 것이고, 만일 그것을 거부한다면 군대와 경찰의 힘으로 권력을 유지하며, 통치의 정당성과 이데올로기의 근거를 민족주의에서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은 비록 껍질 뿐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의 간판을 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브레진스키는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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