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프락치 학생서 교직원까지 활용|「사노맹 사건」을 계기로 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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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그 동안 논란을 빚어오던 학원 프락치가 실제 대학 내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의 공식 문서에서 밝혀진 것은 충격적이다.
서울 동대문 경찰서와 청량리 경찰서가 시경에 보고한 서류에는 망원 (정보원)속에 학생과 교직원들까지 포함돼있고 그 동안 경찰 수뇌부가 『학원 프락치는 절대 없다』고 밝혀온 점으로 미루어 도덕적으로 전체 경찰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특히 10월부터 학원 프락치 시비를 둘러싸고 연세대내에서 설인종군이 학생들에게 집단 폭행 당해 숨졌고, 잇따라 부산-울산 총협 대학생들에게 프락치로 몰렸던 부산 외국어대생 김태수군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죽음으로 맞섭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지는 등 광범위한 피해를 불러 왔다는 점에서도 이번 성균관대 프락치 확인 사건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
학원 프락치나 학원 사찰 시비는 제5공화국부터 끊이지 않다가 제6공화국 들어 한동안 잠잠했으나 최근 다시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어 이른바 공안 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번 사노맹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지난해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습격 사건도 공안사건이란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청량리서가 20일 서울 시경에 낸 정보2계 외국어 대학원팀장 모씨의 표창상신서에도 『…학원 안정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을 경주해왔고…88년 10월 31일 새벽 2시 망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접선을 해 서총련 산하 학투련 결사대가 오전 7시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에 사제 폭탄·화염병 등을 갖고 기습한다는 첩보를 입수, 경찰을 배치해 대비하던 중 오전 5시15분쫌 서총련 산하 6개 대학생 50여명이 사저 부근 2백m까지 잠입하는 것을 덮치다 사제 폭탄이 터져 학생·경찰 8명이 부상하고 외대 총학생 회장 손근우군 (법학4) 등 12명을 현장에서 검거해 사태 확산을 방지한바 있고…』라는 공적 조항이 적혀 있어 경찰의 학교내 프락치 활용은 경찰서마다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운동권 학생들은『5공 중반기까지 경찰과 정보 기관 요원이 아예 학교내에 상주하다 철수한 뒤 공안 당국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 대량의 프락치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원 프락치의 유무 여부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것은 84년 9월에 있었던 서울대 외부인 감금 사건부터였다.
당시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은 서울대생 행세를 하던 재수생 손모군 (당시 19세) 등 외부인 4명을 적발해 학도 호국단 사무실에 2∼6일 동안 감금해 프락치 여부를 조사, 손군으로부터 경찰 프락치라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군은 풀려난 뒤『폭행과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며 학생들을 고소해 유시민씨 등 5명이 구속됐었다.
5공 시절 또 하나의 학원 프락치 논란은 보안사의 「녹화사업」으로 아직까지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녹화 사업을 받고 나왔다는 학생들은 『시위 등으로 강제 징집된 운동권 학생 (이른바 특수 학적 변동자) 등을 대상으로 보안사가 순화 교육과 함께 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학원 정보를 수집해 오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 프락치 논란이 크게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올해 8월부터다.
지난 8월28일 국민대생 김정백군(23 전 문과대 학생 회장)은 연지동 기독교 회관에서『보안사 요원들에게 납치돼 야산으로 끌려가 구덩이에 허리까지 파묻힌 채 수배중인 김정덕군 (23·교지 편집장)의 행방을 추궁 당했고 학원 정보 수집을 강요 받았다』며 양심 선언한 뒤 『이들이 적어준 전화 번호가 보안사 전화번호와 일치한다』고 밝혀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이 같은 운동권 학생들의 프락치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은 「스스로 프락치를 잡아내야 한다」는 감정을 폭발시켜 결국 10월에는 설인종군 폭행 치사 사건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에도 프락치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 이화 여대생들의 안기부 프락치 강요 사실 폭로, 부울 총협의 김태수씨 집단 폭행 사건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운동권 학생들은 학원 프락치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고 주장해왔다.
첫째는 정보 기관에서 선발해 정보수집·염탐 활동 등 조직적인 교육을 받고 침투해 오는 유형이고, 둘째는 학생 운동권이었다가 경찰에 붙잡힌 뒤 회유와 협박 끝에 프락치가 되는 경우라는 것이다.
또 경찰에 정보를 넘겨주는 대신 반대 급부로 돈이나 신분 보장을 받는 유급 프락치와, 마지막으로 범죄를 저지른 재수생등에게 범죄 무마를 조건으로 학원 내에 들어와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지금까지 프락치에 대한 논란은 이처럼 계속되어 왔지만 쉽게 물증을 잡을 수 없는 성질이어서 끝내 베일에 가려져 왔다.
경찰의 대학 내 수사가 6공들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덕적 정당성을 수사의 전과정에서 확보해야할 필요가 있는 공안 사건에서 이처럼 프락치를 활용할 경우 대학 성원간에 불신을 조장함은 물론, 수사 결과에 대한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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