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들기] 27. 상공부 종합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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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70년 1월 말 어느날.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은밀히 김현옥 서울시장을 찾았다. 李장관은 "인구분산정책에 따라 상공부와 상공부 산하기관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종합청사를 건립할 계획이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2서울(남서울)지구에 약 10만평의 부지를 물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金시장은 제2서울 개발의 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으므로 땅 매입권을 시에 일임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李장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金시장은 도시과장을 불러 "상공부단지 부지 10만평을 평당 4천~4천5백원에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수도산(삼성동 73)의 봉은사 앞에 10만평의 논밭이 있었다. 이 땅은 봉은사에서 소유하고 있었지만 조계종 총무원에서 처분권을 갖고 있었다.

시는 도시계획상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4억3천만원(평당 4천3백원)에 이 땅을 모두 사들이기로 조계종 측과 계약했다. 마침 동국대재단인 조계종은 장충동 2가의 동국대 옆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매입하기 위해 4억원 정도가 필요했다. 당시 정부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대전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를 때쯤 상공부의 한 고위간부가 "서울시 간부를 어떻게 믿고 그런 큰 돈을 맡길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자 시는 계약서.영수증 등 모든 서류를 상공부에 넘기고 봉은사 땅 매입작업에서 손을 떼버렸다. 조계종 측은 그제서야 땅 매입자가 서울시가 아닌 상공부며, 이 땅에 상공부 종합청사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고 평당 1천원씩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70년 10월 조계종은 5억3천만원을 받고 봉은사 땅 10만평을 한국전력 등 상공부 산하기관에 넘겼다.

70년 11월 5일 오전 10시. 양택식 서울시장은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제2서울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상공부 산하 12개 기관이 입주할 종합청사 조감도와 3백75만평에 달하는 영동 제2구획정리지구 도면도 공개됐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제2서울 개발의 중심지는 상공부단지가 들어설 삼성동.청담동 일대며, 상공부 외 정부기관과 사회단체 입주를 적극 유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의 교통을 뒷받침하기 위해 70년 8월 착공한 영동대교가 73년 11월 개통됐다.

서울시는 영동지구 홍보에 상공부단지를 앞세웠다. 74년 부임한 구자춘 시장은 서울시청을 상공부 단지로 옮길 계획도 마련했다.

그러나 75년 불어닥친 동남아 지역의 공산화 도미노 현상으로 정부청사의 서울시내 이전이 금지됐다. 이로 인해 상공부는 옮겨가지 못했지만 한국전력 사옥을 비롯, 코엑스빌딩.아셈타워.공항터미널 등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관련 기관들이 입주한 건물이 지금 자리에 속속 세워졌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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