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도 통독 못 막아"|서독 베크베커 박사 세미나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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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대 제3세계 연구소는 17일 서독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아놀트 베크베커 박사 (프리드리히 나우만 연구소장)를 초청, 독일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베크베커 박사는 이날 「동·서독 관계의 현실과 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크렌츠 동독 서기장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개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축출당할 것이고▲동·서독이 이념을 넘어 실질적인 접근을 가속화한다면 주변 강대국들도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크베커 박사의 주제 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동독의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정보의 자유·거주 이전의 자유·집회의 자유 등이 명문화돼 있다.
그러나 지난 4O년간의 실생활은 정반대였다.
10만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국가 안보 기구의 임무란 시민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기능에만 집중됐다.
특히 서방 민주주의 개념으로서의 법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족벌 체제에 의해 수 많은 자의적인 특권행사가 저질러졌다.
공산당인 독일 통일 사회주의 당은 자신들의 희망을 동독 국민들의 희망으로 간주해왔다.
즉 『통일 사회 주의당에 유익한 것이 국가에 유익하며 국가에 유익한 것이 국민에게유익하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같은 허구는 무너졌다. 공산당 지배 체제는 이제 경제 분야를 비롯한 각 부문에서 더 이상 버텨낼 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동독 경제는 당장 일련의 개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완전히 침체 상태에 빠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대한 관료 조직에 의한 중앙 집중식 계획 경제는 모든 자발적인 행동을 마비시켰다.
동독의 외화 보유고는 거의 제로 상태이며 동독 마르크는 외국에서 시세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인 기계 공업의 경우조차 서독과 같은 수준의 가치 창조를 위해선 7배나 더 투자해야만 한다.
정밀 역학이나 광학 분야의 경우 7O년도만 해도 서독보다 10% 높은 생산성을 보였으나 지금은 70%정도 낮아졌다.
언론도 편파성을 지나치게 띠었다.
이렇게 볼 때 동독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국민 대표 기구가 근본적으로 개혁돼야 하며 이를 위해 자유 선거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또 새 경제 법안이 마련돼 주요 산업에 경쟁력을 불러일으키고 기업인·상인·농부들이 자유로운 경제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여행의 자유가 실현돼야하고 정치범들도 석방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법치 국가로서의 면모를 쇄신해야 한다.
크렌츠는 이 같은 기준들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만약 그가 이 작업을 해내지 못하면 국민들로부터 축출 당 할 것이다.
통일 문제와 관련, 양독이 이데올로기에 구애됨이 없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까워진다면 「시기하는 이웃 국가」 (영·불) 들이나 「헤게모니적 강대국」 (미·소)들도 이를 거부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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