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북 혁명열사릉 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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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집단적으로 평양 혁명열사릉에 헌화.참배한 사태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등 50여 명이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열사릉 방문을 강행한 데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그 비용을 대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등은 헌화한 4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적용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통일부는 5월 초 발생한 사건을 석 달 가까이 쉬쉬해와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 헌화.묵념에도 손 못써=혁명열사릉을 찾은 사람은 150명의 방북단 중 3분의 1인 50여 명. 이들은 4월 30일부터 나흘간 남북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겠다며 방북 승인을 받았다. 정부는 사전에 교육을 했고 방북 목적 이외의 정치적 행동을 하지 말라는 내용도 방북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약속을 깨고 헌화와 묵념까지 하는 '주도적 참배'를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통일부는 6월 29일 당사자들에게 공문을 보내 '7월 4일까지 소명할 것'을 알렸다. 양 노총 측에서는 답이 없었다. 그러자 참배 주도자 4명과 이를 막지 못한 노총 지도부 10명에게 한 달간 방북을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통일부는 지난달 19일 이들 단체에 6939만원의 남북협력기금을 내주었다. 이들의 행위를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민간교류로 인정해 항공료와 숙박비.식비 등을 지원한 것이다.

◆ 약속 위반해도 기금 지원=기금 지원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6.25 남침 주도자 등에게 바친 꽃값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덥석 대준 셈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당초 1억409만원을 주려 했으나 3분의 1을 깎은 것"이라고 해명한다. 방북 인원 중 3분의 1이 혁명열사릉에 참배했으니 그만큼 줄인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기금 지원은 머릿수를 기준으로 한 게 아니라 방북단체의 활동 타당성에 맞춰 이뤄지는 만큼 30% 삭감 논리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방북 금지 조치는 실효성마저 없다는 지적이다. 대북 민간교류를 해온 관계자는 "많아야 1년에 몇 차례 방북하는 게 고작인데 1개월 방북 금지가 징계라고 여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제한 기간을 7월 5일부터 8월 4일까지로 해 8.15행사(북측 사정으로 무산) 참석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통일부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5월 1일 발생한 사건을 두 달이 다 된 6월 말이 돼서 당사자 조사에 들어갔다. 당국자는 "사실관계 확인과 관계기관 협의, 조치 방향을 결정하느라 지연됐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미적대고 있는 사이 북한은 지난달 부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방북 참관지 제한을 철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종석 장관은 딱부러진 대응을 못했다.

열사릉 참배에 대해 한국노총 송명진 차장은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솔자인 나에게도 통일부 제재가 없었다"며 기금 삭감 지급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란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노총 측 가운데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재발 방지 대책 시급=북한과는 무조건 만나고 교류만 하면 정부로부터 돈이 나온다는 식은 곤란하다. 남북협력기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는 일부 단체의 도덕적 해이도 지적된다. 세금으로 조성된 협력기금의 총액은 6월 말 현재 1조872억원. 민간이 주축인 사회.문화 협력 지원액은 2003년 17억9600만원에서 이듬해는 42억1600만원, 지난해는 112억5400만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91억8400만원을 썼다. 방만해진 규모에 비해 관리 능력과 감시 기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영종.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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