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책 못 찾는 「정의원 처리」|여권 방법싸고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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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공 청산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중진회담이 열리고 막후협상이 활발히 진행되자 과연 정호용 의원을 어떤 방법으로 밀어낼 수 있느냐가 관심의 표적이 되고있다.
야당 측에서는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여당 측에서 시간을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면서 정의원의 공직사퇴가 이미 호주머니 속에 들어온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박철언 정무장관이 지난 3일 정의원 사퇴불가피론을 주장해 여권마저 이를 추진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아 정의원 사퇴는 거의 기정사실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정의원 측은 「절대 사퇴불가」주장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어 정의원 신상문제처리는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정의원에 대한 가능한 처리방식으로는 민정당이 당론으로 내놓고 있는 국회의 위증고발 및 사법처리 이외에 ▲의원직 자진사퇴 ▲의원직 제명 ▲자진탈당 ▲징계에 의한 출당 ▲외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 민정당 당론인 국회고발 사법처리에 대해선 야당, 특히 평민당 측에서는 『오히려 면죄부만 제공하는 꼴』이라며 펄쩍 뛰고있어 가망성이 전혀 없다.
청와대측 한 인사는 여야의 완전묵계아래 국회고발 사법처리 후 정의원 사퇴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광주문제와 관련한 정의원의 혐의를 사법처리로 깨끗이 벗겨낸 후 명예 퇴진한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정의원 사퇴에 대해 여야는 물론 정의원 자신이 동의해야 하는데 정의원은 책임이 없다고 밝혀진 부분에 대해 책임지는 꼴이 되어 앞뒤가 맞지 않는데다가 야당 측이 그런 식으로 5공 종결에 먼저 도장을 찍어줄 리가 없어 「탁상공논」이란 비판을 받았다.
의원직제명이라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이다.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헌법상 국회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정의원을 제명요구하기 위해선 징계사유가 명백해야 하는데 지역구출신의원을 무턱대고 징계할 수는 없는 일. 현재 의원징계조항은 의원품위를 손상시킨 데 국한되고 있는데 야당 측이 주장하는 위증이나 광주사태책임문제가 징계사유가 될 수 없으며 민정당이 제명에 동조할 리도 없어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징계에 의한 출당도 마찬가지. 민정당 당규에 따르면 국회의원인 당원의 제명은 당윤리위원회와 의원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중앙집행위원회의 의결을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경구회(대구·경북출신 국회의원 및 장·차관들의 친목모임) 회장으로 당실세 중 하나인 정의원을 제거하기 의해서는 누군가 「손에 피를 묻혀야」하는데 그런 악역을 맡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가 정의원 옹호세력도 만만치 않아 의원총회나 중집위가 그런 결정을 하기 어렵다. 아마 강행하려 한다면 당이 쪼개지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관측이다.
따라서 핵심처리가 강행될 경우라도 방식은 의원직 자진사퇴와 자의에 의한 탈당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여권핵심에서는 정의원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기 위한 명분과 논리를 제공하기에 부심해 온 흔적이 역력하다.
민정당 지도부의 애초 생각은 정의원 문제에 있어서는 사법처리로 당론을 통일, 일단 야당에는 정의원을 사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협상에 임하고 연내 종결의 시한에 부딪쳐 12월께 협상이 난항에 부딪쳐 정국에 위기가 조성될 때 정의원에게 정국수습이란 대국적 차원에서 「용퇴」를 호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의원이 그래도 버티면 박준규 대표이하 전 당직자가 인책 사퇴한다는 것이며 심지어 이춘구 총장은 자신의 의원직을 내던지고 정의원의 결단을 호소할 작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의원 문제를 군, 나아가 광주로부터 분리하고 야권으로부터는 사퇴 후 공민권 등에 일체 시비를 걸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아낸다는 것이 여권핵심의 전략.
○…민정당 지도부는 정의원의 사퇴반대의사가 완강하자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주변의 지원세력을 떼어내고 다른 측면에서 압력을 가하는 고립고사작전도 구사했다.
이춘구 총장이 의원들을 다수 만났고 김윤환·유학성 의원 등을 동원해 정의원 주변 의원들의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이총장은 정의원 측근들 중에서 끝까지 버틸 의원은 몇 명 없다는 판단까지 내렸다는 후문.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모두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정의원의 「자진사퇴」형식을 빌려야 하는데 정의원 자신이 반대할 경우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
정의원은 당내압력이 가중되자 최근 이치호·이진우 의원 등 같은 TK출신 율사의원들에게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직사퇴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답은 물론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
이에 따라 정의원 측은 의원직사퇴를 탈당이든 어떤 방식이라도 자진해서 사퇴하거나 탈당하지는 않기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원은 『당에서 나를 자른다면 하는 수 없지만 내 발로 걸어나갈 생각은 없다』고 민정당 탈당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으며 의원직 사뢰는 더더구나 완강하다.
이에 따라 야당 측의 압력을 빌미로 정의원 사퇴를 받아내려던 당지도부의 구상은 사실상 벽에 부딪쳐 있다.

<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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