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음치불가] 윤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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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얼굴 외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치아와 턱은 소리를 만드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턱의 크기나 모양, 움직임, 또는 턱을 앞으로 뺀다든가 하는 등에 따라 실로 수많은 소리와 음악의 밑그림이 짜이기 때문이다.

동양인과 흑인은 백인과는 달리 잇몸 뼈와 치아, 입술 등이 앞으로 돌출된 '돌출입'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한 백인은 얼굴이 갸름하고 턱 모양은 각이 져 있는데 비해 동양인의 턱은 뾰족한 편이다. 흑인의 경우 동그랗고 타원형이다.

턱이 길고 각이 진 경우는 소리에 힘을 집어넣기가 그만큼 쉽다. 동양인은 뾰족한 형태의 턱 선으로 말미암아 소리 자체가 스트레이트하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 흑인의 경우 턱이 짧고 둥근 유선형 형태라 소리가 부드럽게 잘 구르고 잘 꺾인다.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는 데 유리하다. R&B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얘기다. 반면 흑인에게 강력한 비트의 록 음악은 적합하지 않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또는 서로 다른 인종 간의 결합을 통해 상쇄될 수 있다.

흑인인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윤미래(사진)는 위와 같은 인종적 결합으로 훌륭하게 음악적 결실을 본 사례다. 업타운과 티샤니 등에서 활동했고, 드렁큰 타이거와 바비 킴 등 여러 음반에 참여해 솜씨를 보여준 바 있는 그는 본토 영어에 기반, 구르듯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빠르게 쏟아내는 랩 기교와 리듬감으로 정평이 나 있다. 명실공히 국내를 대표하는 래퍼인 셈이다.

윤미래는 여기에 가창력까지 갖추었다. 강하게 터지는 부분에선 소리에 힘을 실어 파워풀하게 내지른다. 전체적으로 흑인처럼 유연한 탄력이 있다. 그가 내는 소리는 기름지고 윤기가 있다. 노래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열정도 좋다.

백인이나 동양인이 하는 R&B 솔은 흑인만의 감성에 다가가기 위해 상당 부분 기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윤미래는 다르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적절한 호흡 처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R&B 감성을 연출하는 것이다. 솔 감각도 좋아 그가 노래하는 여러 곡에서 흑인 색채가 짙게 배어 나온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그러나 래핑을 많이 하다 보니 빠른 전개의 노래에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길게 끄는 음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주는 게 옥에 티다.

윤미래는 새 앨범 준비를 위해 현재 미국에서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힙합이 아닌 R&B에 무게를 둔 본격 흑인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각오다. 이미 국내에선 흑인적인 감성과 음악 쪽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윤미래이고 보면, 미국 본토에서 업그레이드한 다채로운 가창력과 감성 연출이 어떨지 벌써 기대된다.

조성진 음악평론가.월간지 '핫뮤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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