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입 열풍에 실업 고 교육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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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동작구 S공고 3학년교실. 2학기 들어 당연히 취업준비를 위해 모두 현장실습을 나가 텅 비어 있어야 할 교실에서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실업고 말년」과는 동떨어진 국어수업을 받고있다.
공고3학년의 국어수업이라면 한 두 명쯤은 어김없이 딴청을 부릴만한데도 문제집을 풀어나가는 교사의 강의에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학생수가 적고 교실 게시판에 요란한 「격문」만 없을 뿐 대입을 앞둔 여느 인문 고 3학년 교실과 다를 바 없다.
부산C상고도 마찬가지. 3학년 7개 학급 3백85명중 60명이 한 반이 되어 오후 10시까지 입시수업에 열중이다. 45일 앞으로 다가온 대입학력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진학반 학생들」.
『실업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88년의 경우 74%로 낮은 것도 아니고 기계·도금 등 인기학과는 스카우트까지 되고있으나 재학생의 대학선호현상이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S공고 취업담당 박모 교사(47)는 『대학을 나와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전염병처럼 번져 실업교육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 진학반 송모군(18)은 『졸업후 기능직으로 취직한다해도 4년 후면 대학을 나온 동창생 밑에서 일하게 되는데 대학에 안가고 주저앉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 같은 실업고의 「대학선호바람」은 서울Y상고의 경우 지난 9월 실시된 대입체력장검사에 졸업예정자 9백30명중 90%인 8백30명이 응시한 것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일하면서 배우겠다는 향학열로 대입체력검사에 응한 학생들도 있어요. 그러나 20∼30%는 아예 취업은 안중에도 없이 대학진학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교무주임 정모 교사(49)는 『학생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니 실업고에 진학 반이라는 「따로 학급」을 두지 않을 수 없다』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올 실업계고교 졸업자 25만9천7백71명 중 대학진학을 희망한 학생은 21%인 5만6천5백57명. 결국 실업계 고교생의 5명중 1명 꼴이 실업교육도, 진학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절름발이 교육」을 받으면서 대학 문을 두드린 셈이다.
언젠가부터 몰아닥친 실업계고교의 대학열풍. 그러나 아무리 개인적으로 대입준비를 했더라도 인문 고를 따라갈 수 없어 실업고 출신의 대학진학률이 높을 리 없다.
실업고 학생들 중에는 고입연합고사에 자신이 없어 일단 실업고라도 들어가고 보자는 「낙제문턱의 열등생」이 끼어있는 탓에 더욱 그렇다.
이는 금년 실업고의 대학진학률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입지원자 5만6천여명 중 진학자는 전문대를 포함해 2만4천7백28명으로 전체졸업자의 9.5%에 머물렀고 그중 4년제 대학진학자는 8천1백21명에 불과하다.
대구D공고 이모 교장(61)은 『대입준비를 하느라 실업교육에 소홀했던 대입 낙방생들은 재수학원을 찾아가기도, 취업하기도 어정쩡한 결과를 불러 엄청난 교육낭비만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퇴하는 학생들이 인문고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아 큰 문제. 광주C상고·대전K공고에서는 올 들어 각각 40여명이 자퇴하고 인천B공고에서도 45명이 중퇴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해의 경우 2만7천7백 명(제적포함)이 중퇴, 이들 중 적지 않은 학생들이 대입검정고시학원에 들어가는 「탈학교현상」을 나타냈다.
반면 지난해 인문고 학생 수는 10만 명이 늘어나고 학교수도 54개가 늘어나 실업고 5백94개중 6개교가 문을 닫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다 중학생들의 실업고 진학기피현상이 고개를 들어 특히 지방 농고에서는 안팎으로 몸살을 앓고있다.
충남도내의 경우 올해 5개 농고가 모두 정원이 미달됐고 금산농고는 7학급 3백92명 모집에 1백70명이나 미달됐다.
때문에 충남도 교위 측은 청양 농고에 대해 1학급을 감축시켰으며 충북에서도 올 정원미달12개교중 농업계고교가 70%를 차지해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충북J농고 이모 교사(42)는 『이농현상도 한 요인이지만 무엇보다 대학진학을 위한 도시인문고 진학선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6년도만 해도 전국 91만6천9백83명에 이르던 실업계고교생수는 3년 만인 89년 현재 83만5천2백16명으로 무려 9%에 가까운 8만 여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방 실업고에서는 교실이 크게 남아돌아 충남금산농고는 한 반 학생수가 30명 선에 그쳐 인문고의 60명선 과밀학급에 절반수준이다.
전문기술인력·직업인을 길러내기 위한 실업교육. 고입 때의 진로지도 교육부재와 「대학간판」을 따지는 사회풍토가 실업고의 입시병을 부채질하고 있다. 「떳떳한 직업인」이 되겠다는 입학당시의 포부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대학바람」에 흔들려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A공고 실과담당 신모 교사(50)는 『고졸자와 대졸자간의 임금격차 해소와 함께 실업고 출신자들에게 떳떳한 직업인으로 가치관을 심어주는 사회분위기가 이뤄지지 않는 한 실업교육은 「절름발이교육」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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