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약 제도 수술…의약계 회오리 전망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보험약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의약계 시장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험약가 제도 개선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의지가 강해 그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포지티브 리스트(선별 목록) 방식을 도입해 비용 대비 효과있는 약만 보험약으로 선별적으로 골라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면서 국민건강과 복리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약 제도 근본적 수술"

보험약 선별 목록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보험약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 관리시스템 개선 방안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비용에 비해 치료효과가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한 의약품만 보험약으로 인정,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지불함으로써 나머지 품목은 보험약 목록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보험약으로 등재된 의약품은 너무 많다. 무려 2만1천700여 품목에 이른다. 식약청의 허가만 받으면 거의 아무런 걸림돌없이 보험약으로 인정받는 현재의 보험약가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약 중에서 실제 의료기관에서 자주 처방되는 약은 4∼5천 품목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 중에는 생산조차 안되고 있는 보험약도 상당수에 이르며, 정부는 이런 미생산 품목 현황조차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제약사가 식약청 허가를 받아 보험약 등재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부적합 품목만 빼고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보험약 목록에 올려주는 방식을 말한다.

◇제도 개선 배경

정부가 보험약 선별 목록 방식으로 보험약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험약값으로 나가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보험약값은 전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3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 따져도 2005년 현재 7조원 가량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15%에 비해 2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약값을 잡지 않고서는 보험재정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더구나 고형화 사회를 맞아 약제비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 잡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정부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가면 선진국 수준인 3천∼5천여 보험약만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조홍준 교수는 "보험재정 안정과는 별도로 동일한 성분과 효과의의약품이 수십개씩 보험약으로 등재돼 있어 의사 조차 어떤 약을 선택해 처방해야 할 지 모를 지경"이라며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를 따져 선별적으로 보험약으로 등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구조조정 불가피···반발 걸림돌

선별 목록 방식을 도입하면 보험약 목록에 올리기 위해 제약사간 품질과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서 궁극적으로 약값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다 보험약의 가격도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어 건강보험공단의 주도권이 크게 강화되면서 약제비 절감에 더욱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필요한 의약품만 보험약으로 등재되면 제약사들이 불필요한 영업비용을 줄이게 되고 제약사들과 병의원, 약국 등 요양기관간에 암암리에 오가는 각종 뒷거래 관행도 근본적으로 차단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일거양득의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약사들에게 보험약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이 효과도 좋고 가격도 싼 의약품만 보험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보험약 목록에서 떨어뜨리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카피약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나 대형국내 제약사는 그나마 괜찮겠지만, 특히 군소 제약사의 경우 힘든 영업환경에 직면해 도산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후죽순으로 난립한 국내 제약산업에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실타래처럼 얽힌 제약업계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가 새로운 약가관리 시스템 도입의 관건인 셈이다.

제약업계는 제약협회와 다국적제약협회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의지는?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정부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정자 시절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약제비 절감을 위해 보험약 등재방식을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하는데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

유 장관은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의 보험약값 절감방안에 대한 질의에 현재의 약가관리 제도가 보험재정을 상당히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병원과 의사, 약사 등이 서로 협력하고 우선적으로 공감대를 이룬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앞서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도 측면 지원을 했다.

변 장관은 지난해 12월말 국회에서 열린 보건의료선진화 비전 토론회에서 건강보험 재정 안전화를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보험약 등재 목록을 정하고 보험약 가격을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간의 약가계약제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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