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번지는 AI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에이즈에 시달려 온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이번엔 조류 인플루엔자(AI)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주 나이지리아의 가금류에서 AI가 확인된 데 이어 13일엔 두 명의 어린이가 AI 의심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AI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에 AI가 퍼질 경우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에이즈는 물론 말라리아 등 각종 풍토병이 만연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보건 시스템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퀸 메리 대학의 존 옥스퍼드(바이러스학) 교수는 "모두들 바이러스가 아프리카까지 퍼지면 어쩌나 걱정만 하고 있을 뿐 대비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3일 보도했다.

AI는 2004년 말까지만 해도'아시아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 발생국이 주로 동아시아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중동.아프리카 등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달 17일엔 이라크 북부 라니야에서 15세 소녀가 중동 지역 최초로 AI에 감염돼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유엔과 이라크 당국이 밝혔다.

11일에는 이탈리아.그리스.불가리아의 야생 조류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그리스에서는 사람이 AI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유럽의 경우 그나마 방역.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프리카는 AI가 어느 정도 확산돼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이지리아에선 지난달 중순 이미 수만 마리의 가금류가 폐사했는데도 이 나라 방역 당국은 "AI가 아닌 조류 콜레라"라고 하는 등 태평이다.

IHT는 "세계 최고의 에이즈 창궐 지역인 아프리카에 AI가 퍼질 경우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바이러스인 'H5N1'이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진 쉽게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 간 AI 전염이 일부 돌연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가능해진다면 이는 곧바로 세계적인 재앙을 낳을 수도 있다.

AI가 이미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렸다면 유럽 대륙엔 엄청난 화(禍)가 미칠 수 있다. AI를 전파하는 철새들이 다음달부터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대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프리카를 아시아와 비교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아프리카의 인구밀도가 아시아보다 낮은 데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정글.초원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AI의 빠른 확산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닭.오리 등 가금류와 사람이 한 지붕 밑에서 지내는 경우가 아시아 국가들처럼 많지 않아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AI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 안 되는 건 문제라는 게 국제사회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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