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든 개에 놀라 넘어졌는데…물지 않았으니 배상 못 한다는 견주

중앙일보

입력

경남 창원시에 사는 초등생 A양(8)은 2019년 6월 아파트 화단 앞을 지나던 중 나무에 묶여있던 개가 달려드는 바람에 넘어졌다. 팔꿈치를 다쳐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심리치료도 받아야 했다.

A양의 부모는 견주에게 치료비와 위자료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자신의 반려견은 성대 수술을 해 짖지 못하고, 산책로의 폭이 4~5m 정도로 여유가 있어 A양이 개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또 A양의 심리치료가 반려견 사건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A양의 부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법원은 강아지가 행인을 직접 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협에 놀라 다쳤다면 견주가 치료비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규모와 개물림 사고 횟수, 입마개 착용 의무가 있는 맹견 5종 이미지. 자료 농림축산부

국내 반려동물 시장규모와 개물림 사고 횟수, 입마개 착용 의무가 있는 맹견 5종 이미지. 자료 농림축산부

창원지법 김초하 판사는 “개가 달려들어 A양이 이를 피하려다 상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A양은 8살의 아동이지만 견주의 반려견은 성견으로 그 크기가 성인의 무릎 정도에 오는 중형견”이라며 “주인 외 다른 사람에게는 큰 위험과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고 봤다. 또 갑자기 달려드는 개를 발견한다면 아무런 방어행위를 하지 못하고 놀라 주저앉는 것은 일반적인 반응으로, A양이 도망가는 등 방어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를 A양의 탓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김 판사는 A양의 치료비 266만원과 위자료 300만원을 견주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의 정성훈 변호사는 “반려견이 물거나 할퀴는 등 직접적 신체손상을 입힌 사건이 아님에도 병원비뿐 아니라 정신적 손해까지 모두 인정됐다”며 “애견인구가 1000만명을 넘긴 요즘 견주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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