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지놈'…도전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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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세포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조합을 가리켜 '액손 길잡이(Axon Pathfinding)'라고 한다. 뇌세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에 규칙적인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이다.

뇌과학의 발전이 계속되면서 '액손 길잡이' 기능 가운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이 발견됐다. 하나의 유전자에서 발현된 단백질(BDNF)이라도 주변 여건에 따라 신경돌기를 뻗게 하거나 움츠러들게 하는 등 서로 다른 반응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대략 3만5천여개. 이들 유전자가 1조개에 달하는 뇌세포의 조합을 일일이 짜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단백질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해석하지 않고서는 뇌의 형성을 설명할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인체를 형성하는 모든 정보가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인간의 지놈지도가 인체의 설계도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거대한 생명현상의 신비를 1백% 담아내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자들은 "인간지놈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가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포스트 지놈 연구에서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국가 연구력을 한데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트 지놈 분야는 프로테오믹스.합맵(HapMap) 프로젝트.비교 지노믹스 등이다.

◇ 프로테오믹스

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Gene)를 모두 합해 지놈(Genome)이라고 일컫는데 비해 지놈에서 발현된 단백질(protein)의 총집합(-ome)을 프로테옴(Proteome)이라고 부른다.

프로테오믹스(Proteomics)란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학문(-ics)으로 풀이된다. 대부분의 생명현상이 단백질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인 만큼 단백질의 다양한 기능과 종류를 데이터로 한데 묶어 질병 예방과 퇴치에 이용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21일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서울대 약대 김규원 교수의 연구가 좋은 예다. 김교수는 혈관생성에 관계하는 단백질들과 그 유전자들을 분리해냈다.

그런데 산소농도가 높아지면 혈관생성 단백질에 변형이 생기면서 혈관생성을 억제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유전자 상에서는 아무런 변형이 없었지만 단백질 간 상호작용으로 혈관생성이 촉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산소 농도를 조절하거나 혈관생성 단백질에 변형을 가하는 신약이 개발된다면 암 정복도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프로테오믹스의 진가인 셈이다.

포항공대 장승기(생명과학과) 교수는 "단백질을 분리하고 단백질 간 결합 여부를 알아보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의 질량분석기는 프로테오믹스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말했다.

◇ 합맵(HapMap) 프로젝트

곱슬머리 또는 직모 등 각 개인의 형질 차이는 유전자 어느 부분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같은 유전자라도 극소수의 염기가 뒤 바뀌면 곱슬머리가 직모로 변해버릴 정도로 그 영향은 크다.

이것이 단일염기변이(SNP)인데 현재 발견된 SNP는 30억개의 염기 가운데 약 3백만개. 이중 실제로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SNP는 1% 정도로 추정하고 있을 뿐 그 기능의 대부분을 밝혀내지 못했다.

인간의 염색체는 부모로부터 하나씩 받아 한쌍을 이루는데,이중 한쪽 염색체에 발생한 변이의 조합이 형질로 나타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체 지놈보다는 '반쪽 지놈(Haploid)의 지도(Map)'를 의미하는 '합맵'이 형질을 예상하는데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 비교 지노믹스

완성된 인간의 지놈에 다른 동물의 지놈을 비교 분석해보는 학문을 일컬어 '비교 지노믹스'라고 부른다.

하워드휴 메디칼 연구소의 게리 루빈 부소장이 "지놈 염기서열은 진화를 밝히는 열쇠가 될것"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말라리아와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침팬지의 지놈을 면밀히 비교 분석해보면 인간과 달리 이들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을 찾을 수 있고,결국 인간에 적용할수 있는 치료법 개발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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