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病은 "자연 파괴 탓"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는 봄이 되면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감기환자가 아니라 '화분병(化粉病)환자' 들이다.

화분병은 '코,입을 통해 몸 안에 들어간 꽃가루가 일으키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콧물, 재채기, 코막힘 증상이 나타나고 두드러기, 가려움증, 눈 충혈, 천식, 호흡곤란으로 악화하기도 한다.

화분병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유달리 화분병 환자가 많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도쿄(東京)의 인터넷 조사기관인 '매크로밀'이 최근 전국남녀 3천2백33명을 조사한 결과 33%는 '화분병에 걸린 적이 있다', 19.2%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증상을 보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일본의 방송들은 3월이 되면 일기예보와 함께 매일 '화분병 주의보'를 알려준다. 지역별로 꽃가루가 많이 날릴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알려주는 것이다. 편의점이나 약국에는 화분병 예방약, 치료약이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화분병을 일으키는 꽃가루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주범은 삼나무다. 됴쿄의 경우 주변 산에 가면 20~30m 정도 쭉쭉 뻗어 있는 삼나무 숲을 쉽게 볼 수 있다. 매년 3월 피는 삼나무 꽃에서 나온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도쿄시내로 날아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흥미있는 것은 화분병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정부는 1940년대 후반부터 경제발전 정책에 맞춰 전국의 산에서 나무들을 베어내고 상업성이 좋은 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전국 삼림의 40% 정도가 삼나무로 교체됐다.

그러나 숲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폐해도 만만치 않다. 하늘을 뒤덮은 삼나무로 인해 다른 풀과 관목은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산에 빗물이 고이지 못해 가뭄피해도 한층 심해졌다. 이른바 '삼나무 가뭄'이다.

화분병도 삼나무 숲 조성정책 때문에 발생한 병이다. 일본 정부는 "꽃가루가 적은 신종 삼나무를 심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폐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화분병은 경제논리에 맞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면 그에 상응하는 응보(應報)를 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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