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히스토리채널 출연 채명신씨 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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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면 우리 군이 잘 할 수 있겠지'라고 묻기에 '게릴라전에 능한 베트콩을 이기기 힘듭니다. 미군이 아무리 최신식 무기를 퍼붓는다고 해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라고 답했죠. 朴대통령이 굉장히 언짢아 합디다."

이라크전 전투병 파병 문제를 놓고 찬반 양론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전 한국군 총사령관을 지낸 채명신(蔡命新.77) 전 육군 중장이 입을 열었다.

蔡전사령관은 지난 7일 케이블 TV 히스토리채널 '다시 읽는 역사, 호외(號外)'(9일 밤 12시 방송)에 출연,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상황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베트남전 파병을 놓고 국론 분열이 심각했던 1965년 초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래서 파병 관련 '청와대 보고'를 담당했으며 이후 69년까지 5년간 맹호부대장 겸 총사령관으로 베트남 현지에서 우리 군을 지휘했다. 이런 그에게 베트남전은 무엇이었을까.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 의견에도 반대를 했었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지요. 당시엔 군사력은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서도 우리가 북한보다 앞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병 파병을 거절한다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 베트남에 보낼 테고 그러면 북한에 호기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전 파병은 조국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이 있었습니다."

명분이 있긴 했지만 이국타향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5천7백여명의 젊은이에게 베트남전은 악몽이었다. 이들을 책임졌던 蔡장군에게도 마찬가지.

"지금도 사상자들만 생각하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특히 같은 부모 입장에서 베트남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하지만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한.미 동맹관계를 확고히 할 수 있었으니 이들이 의미 없이 숨져간 건 절대로 아닙니다."

얘기 막바지 화제는 자연스레 이라크전으로 흘렀다. 蔡장군은 "이번에도 파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하지만 상황이 베트남전 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답했다.

"우선 이번 파병은 치안유지 활동을 위한 것인 만큼 베트남전 때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군이 신중하게 행동한다면 희생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거죠. 문제는 파병 이유인데, 베트남전이 명분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번엔 실익을 좇는 거죠. 70~80년대 경험했듯이 중동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니까요."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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