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가라" 채식 열풍… 방송사 보도이후 신드롬

중앙일보

입력

15일 점심시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채식 전문식당.

육류는 전혀 없고 콩으로 만든 소시지 등 열댓 가지 식물성 반찬과 밥.빵.국 등의 메뉴를 갖춘 90여석 규모의 뷔페식 식당은 손님들로 무척 붐볐다. 헛걸음을 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처음으로 이 식당을 찾았다는 장은정(35.여.회사원)씨는 "최근 채식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직장 동료들과 처음 와봤다"며 "채식식당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 김천호(金千鎬.43)씨는 "평소 하루 30~40명 정도이던 손님이 지난 주말 이후 1백5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금연에 이어 '채식(菜食)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증가하는 데다 지난주 SBS와 EBS 등 방송사들이 신년특집 기획 프로그램에서 채식의 중요성을 집중 보도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채식 식당이나 채식 재료 전문점에 사람들이 몰리고 채식 정보를 담은 인터넷 사이트나 서적도 폭발적인 인기다.

채식 양념치킨.양념 콩불고기.채식 라면.콩햄 등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는 베지푸드. 하루 60~70건이던 택배 주문이 이번주 들면서 1백30건을 훌쩍 넘었다.

푸른생명 한국 채식연합(http://www.vegetus.or.kr)의 이광조(李光朝)서울대표는 "채식 정보.요리법 등을 올려놓은 인터넷 사이트의 방문자가 최근 하루 수천명에 달한다"며 "8백여명이던 회원도 요즘 며칠 사이에 1천여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사이트에는 "시중에 파는 과자류 중 동물성 기름이 첨가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냐" "채식만 해도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느냐"는 등의 글이 매일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채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과채류와 곡물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1991년부터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경실련 '정농(正農)생활협동조'에는 최근 사흘 사이에 회원이 1백명 가량 늘고 주문량도 평소의 10배를 넘었다.

김일섭(金日燮.47)본부장은 "그렇지 않아도 겨울에는 공급량이 달리는데 갑자기 수요가 늘어 감당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채식 관련 서적도 인기다. 교보문고측은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나는 풀먹는 한의사다』『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같은 책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3~5배 정도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갑자기 불붙은 채식 바람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연세대 이종호(李鐘昊.식품영양학)교수는 "채소류의 섭취량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채식만 할 경우 필수 단백질이 부족할 수 있다"며 "특히 생야채를 소화하기 힘든 사람이나 노인의 경우는 흰살 생선과 살코기 등을 균형있게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의원 원장 신용섭(申龍燮)씨는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이 채식만 할 경우 소화가 잘 되지 않고 헛배가 부르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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