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 없는 자폐성인, 취업자 1~2% 뿐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안양의 한 전자부품업체에 다니는 '자폐 성인' 정모(33)씨. 온갖 궂은 일을 하고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40만원이다.

김포공항 근처의 집과 회사를 한시간 넘게 버스.지하철을 갈아타며 오가지만 지각 한번 한 적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섯 차례나 직장을 옮겨야 했던 그는 '또 쫓겨나면 안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퇴근 후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방안을 빙빙 도는 정서불안증까지 생겼다.

올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2백개 지역의 장애인 4천여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평균 취업률은 71.6%였으나 이중 자폐 등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제로였다.

반면 일본은 자폐 성인의 일반직장 취업률이 20%에 이르고 나머지도 60%는 각종 복지기관이 운영하는 작업장에 다닌다.

유경호 믿음복지회 사무국장은 "직장이라 할 만한 번듯한 곳을 다니는 국내 자폐 성인 비율은 1% 이내일 것" 이라고 추정한다.

혼자 출퇴근하고 대화가 가능해야 하는데 자폐 장애인은 이런 '취업의 기본 자격' 을 갖추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을 받아주는 곳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립하지 못하면 국가나 부모가 보살펴야 하는데 국가의 역할은 취약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복지시설의 경우 전국적으로 62곳밖에 안돼 이미 포화상태다.

또 운영 지원예산(장애인 1인당 연간 5백84만3천원)은 장애유형에 관계없이 똑같아 시설 운영자 입장에서도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자폐 장애인은 받기 어렵게 돼 있다.

부모가 사적인 일을 볼 수 있도록 낮시간 또는 단기간 돌봐주는 주간.단기보호시설도 전국에 50여곳뿐이다.

미국은 1976년 '발달장애인 권리장전법' 을 만들었으나 우리의 장애인복지법엔 지난해에야 자폐가 추가됐고, 정부 예산 중 사회보장예산 비율은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30~40%보다 훨씬 낮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인제대 남민(소아정신과)교수는 "자립을 목표로 어릴 때부터 적성을 조기개발해 그에 맞는 교육.훈련을 시키고, 성인이 되면 거주.취업.재활.치료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통합형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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