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의료정책] 3. 여야 대담

중앙일보

입력

의약분업.의보재정적자 문제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치권은 무엇을 했느냐는 목소리도 높다.

본지는 21일 남궁석(南宮晳)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강재섭(姜在涉)한나라당 의약분업특위위원장(부총재)을 초청해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여야를 대표한 두 사람은 의약분업의 기본취지에는 공감했고 '정치권 자성론(自省論)' 도 폈으나 의료혼란의 원인과 대책에는 적지 않은 이견을 노출했다.

남궁석〓기업의 일이든 국정(國政)이든 잘못이 있다면 정책 자체가 잘못이냐, 아니면 시행과정에 문제가 있었느냐를 따져야 한다.

'선(先)처방-후(後)투약' 체제로 가자는 의약분업의 기본취지는 지금도 유효하고 맞는 방향이다.

국민건강을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과정이 섬세하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우리 당도 책임이 있다.

방향은 맞는데 시행을 잘못해 대통령께서 '내 책임' 이라고까지 언급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

강재섭〓선처방 후투약이라는 취지에는 우리도 찬성한다. 지금 와서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더 큰 재앙을 부를 우려가 크다.

나는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제기하고 싶다. 대통령이 원칙을 정하면 무조건 밀어붙이고 흑백논리로 나가고 있다.

의약분업과 빅딜.교육정책 등 개혁을 명분으로 시행한 것들이 모두 혼선을 빚고 있지 않은가.

김대중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 이른바 '인치(人治)' 가 문제다. 이견을 제시하면 반(反)개혁.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풍토가 횡행하고 있다.

南宮〓정치적 수사보단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중요하다. 나는 의보재정 대책 마련을 위해 우선 "도대체 얼마나 모자라는지 정확한 계수부터 내놓으라" 고 정부에 주문해 놓았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수습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자신한다.

온 국민이 대책을 주시하고 있지만, 하루 이틀 늦더라도 보다 완벽한 대책을 세우겠다. 곧 종합대책이 나올 것이다.

姜〓金대통령은 1997년 대선 때 "의약분업.의료통합을 하면 1조원 이상의 재정잉여금이 생긴다.

절약되면 교육문제에 보태겠다" 고 분명히 얘기했다. 그런데 실무자들은 "추가비용이 안들어간다" 고 했다가 "1조5천억원이 더 든다" 로, 다시 "4조원이 필요하다" 로 말을 바꾸고 있다.

대통령이 책임을 시인했으니 잘 수습하면 될텐데 총리는 부처를 나무라고 부처는 정치권을, 정치권은 보건복지부를 나무라고 있다. 이래서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南宮〓일부에선 당.정이 책임을 미룬다고 오해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부터 찾고, 그 안에서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의료수가를 다섯차례, 43% 가량 인상했다. 보험료 지급대상에 단층촬영(CT) 등 고가진료도 포함시켰다.

당연히 보험금 지급액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허위청구.과잉진료를 다 솎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보험료 수금률도 직장의보는 99%지만 지역의보는 70% 수준에 불과해 재정악화에 일조했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따지니 8~9가지나 됐다.

姜〓우리 당은 당초부터 "준비가 안됐으니 6개월간 시범실시해 국민부담 증가여부나 의약품 오.남용이 실제로 줄어드는지를 평가한 뒤 시행하자" 고 주장했다. 과거의 야당처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고 정부가 잘하기를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오니 솔직히 안타깝고 당혹스럽다. 우리가 시행 연기나 임의분업 같은 주장을 좀더 강력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의약분업 시행 후 보험재정 부담이 62% 가까이 증가했고, 본인 부담금도 30%나 늘었다. 수가가 인상된 결과 약국에 대한 보험급여액이 10~13배, 일반의원은 52% 증가했다.

그 탓에 건강보험 재원이 다 고갈됐다. 전체 약국 중 25%가 특정병원 처방전의 71%를 독점처리하는 약국 양극화 현상도 나타났다.

南宮〓그 말씀을 좋은 지침으로 삼겠다. 나는 기업에 있을 때 어떤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가 오차가 5%가 나면 잘된 계획이고 실행이라고 생각했다.

10% 정도 오차가 나더라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10%를 넘으면 계획 자체가 짐이 된다.

솔직히 말해 의약분업.의보재정 문제는 오차가 15%를 넘었다고 본다. 계획도 섬세하지 못했고, 실행에도 문제가 있었다.

姜〓바로 그 때문에 우리 당은 의약분업과 의보재정 통합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수준과 문화적 배경을 감안한 제도여야 혼란이 적다.

우리 국민은 감기에 걸리면 딸아이에게 "동네약국에 가서 金약사에게 약을 지어달라고 해라" 고 심부름시키는 문화다. 金약사가 그 사람의 병력(病歷)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지어온 약 몇봉지를 먹고 감기가 낫는 문화다. 이런 문화적 바탕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여선 안된다.

의보재정 통합도 통합결정 후 책임의식이 약해지고, 더불어 재정이 부실해지고, 현실적으로 보험료 징수율도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의보재정 재분리 여부를 포함, 드러난 문제점 전반을 신중히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임의분업도 검토해볼 만하지 않은가.

南宮〓의보재정 통합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 그 전에 일부 문제점들을 확실하고 말끔하게 보완할 것이다.

만일 이전으로 되돌릴 경우 거기에 드는 비용과 사회적 혼란은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의 큰 틀과 방향을 유지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개선해나가는 게 정도(正道)라고 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아까 말한 재정 악화의 원인을 뒤집어보면 감축 요인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현재 70%대인 지역의보료 수금률을 90%대로 끌어올리기만 해도 몇백억원이 나온다.

또 5인 이상 기업체 중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매달 3천개씩 새로 생겨나는 이런 기업의 의보 가입을 적극 유도하겠다.

지역의보에서 직장의보로 넘어가면 보험료의 절반을 기업이 대니까 그만큼 비용이 절감된다. 건강보험공단의 관리운영비도 현행 7%에서 세계적 수준인 3%대로 낮추겠다.

이렇게 하면 부족분 4조원 중 2조~2조5천억원 정도는 나올 것이다. 나머지 부족분에 대해선 국고지원이나 보험료 인상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姜〓우리는 ▶급여비 지출을 최소화하고 ▶국고지원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을 원칙으로 세워놨다.

공적자금을 수조원씩 투입하는 마당인데 국민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이라면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은 국가재정적자 해소대책과 맞물려 종합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다.

어쨌든 눈이 왔을 때 눈을 치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당의 책임이다. 우리도 잘 치우도록 도울 용의가 있다.

南宮〓우리 당도 어디까지나 비용절감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다. 국고지원 같은 것은 그 다음 문제다.

姜〓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겠다. 우리 당은 어제 총체적 정책혼선의 책임을 물어 내각총사퇴 권고결의안을 국회에 냈다.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원점에서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南宮〓연말까진 문제점들이 정리될 것이다. 옥동자가 아니라고 이미 태어난 아기를 물릴 수는 없지 않은가.

姜〓땜질식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혹시 지금까지 해왔고 외길이니 갈 수밖에 없다는 식 아닌가.

南宮〓기업적 마인드를 불어넣어 섬세하게 대책을 다듬겠다. 효과가 천천히 나타날 것이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야 거둔다. 이제 씨를 뿌린 단계에서 곡식이 없다고 탓하지 말고 이해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변혁기의 충격을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점에 대해선 집권당으로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진통이란 점을 이해해 달라.

姜〓사실 나도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국민들께 면목이 없다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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