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한해 100명 죽어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역 뒷골목의 싸구려 숙박집에서 노숙자 申모(44)씨가 피를 토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구걸로 얻은 7천원으로 하루 묵었던 2평짜리 쪽방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전북 남원의 집을 떠난 지 2년여 만이다. 시신은 며칠 뒤 겨우 연락이 닿은 고향의 노모와 동생이 거둬갔다.

지난 1월 25일 서울 동부시립병원에서 숨진 崔모(45)씨. 그는 1년 전만 해도 서울 강북구에서 조그만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부인(40)과 아들(18)을 둔 가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대장암으로 1천만원이 넘게 들어간 수술을 받은 뒤 부인.아들이 함께 가출해 노숙자로 전락했다.

공공근로 등을 하며 지내온 崔씨는 재발한 암으로 결국 숨졌고, '연고자가 없는 행려병자' 로 처리돼 화장됐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이들처럼 숨진 노숙자는 2백25명인 것으로 7일 밝혀졌다. 경찰 집계다.

보호시설 수용인원을 포함한 서울 전체 노숙자 3천7백38명의 5%가 넘는 숫자다.

특히 올해부터 이들에 대한 한시적 생활보호 제도가 중단돼 의료구호가 끊기면서 올들어서만 14명이 숨졌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노숙자들에게도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대부분 행려병자로 화장 처리〓지난해 8월 서울역 광장에서 숨진 40대 남자는 주민등록이 파악 안돼 석달간 서울 을지병원 영안실에 방치된 끝에 중구청에 넘겨져 화장됐다.

구청측은 지난해 이렇게 20여명의 시신을 화장터로 넘겼다고 밝혔다.

노숙자 쉼터인 자유의 집에서 지난해 숨진 노숙자 22명 중 6명은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다른 6명도 신원파악이 안돼 역시 행려병자로 처리됐다. 서울 보라매병원 영안실 등 시립병원마다 이런 시신이 10~20구씩 방치돼 있다.

자유의 집 노숙자들을 보호 중인 양천경찰서 최영근(崔英根)경사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영안실.장례비용 때문에 가족들이 인수를 거부하기도 한다" 고 전했다.

◇ 최소한의 의료보호라도〓노숙자들의 잇따른 사망에 대해 관계자들은 "노숙자 대책이 보호시설 수용에 급급할 뿐 의료 구호 측면에선 지원이 거의 안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노숙자 등을 의료보호환자로 간주해 국가예산으로 지원해오던 한시적 생활보호 제도가 없어진 것도 한 이유로 꼽는다. 이 제도는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며 중단됐다.

대신 올해 의료구호비 10억원이 책정됐으나 쉼터 시설내 장기질환자들의 입원비나 수술비를 감당하기에도 모자란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노숙자지원센터 서정화(徐貞花)실장은 "노숙기간이 길수록 건강은 더 심각한 상태" 라며 "특히 거리노숙자에 대한 건강검진.야간 일시보호시설 등 대책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관련 사이트 노숙자 다가서기 지원센터(http://www.homeles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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