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주사제 파동' 복지부의 강변

중앙일보

입력

"정부는 지난해 11월 의(醫).약(藥).정(政)회의에서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자는 안건을 제기했을 뿐 실제로 주사제 제외 결정을 한 데는 국회다. "

보건복지부 변철식 보건정책국장이 23일 복지부 기자실을 찾아와 한 말이다. 곁에 있던 송재성 연금보험국장이 거들었다.

"1999년 5월 의약분업 대상에 주사제를 포함한 것도 의.약계를 중재한 시민단체에 의해서였다. "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뺀 것도 정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두 사람의 얘기를 울산대 의대 조홍준 교수(가정의학)에게 전해주고 코멘트를 요청했다.

"정부가 뭘 위해 존재하는지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는 셈" 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사실 형식적으로 따지면 두 국장의 말이 틀리는 건 아니다.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야 법이 시행되므로 주사제를 뺀 곳이 국회라는 말이 잘못된 지적은 아니다.

주사제를 포함시킬 때 시민단체가 중재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치에 안맞는다.

그렇다면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면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매년 4천억원의 돈을 절감할 수 있다던 최근 복지부의 주장은 뭐란 말인가.

지난해 8월 의약분업을 시작한 후 7개월간 왜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과 약국을 오가야 했는가.

국민들이 얼마나 인내하는지를 지켜보다 더 볼 수 없어 이번에 제외했다는 말인가.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전 전문가들은 주사제가 야기할 국민 불편에 대해 수차례 지적했다.

그 때 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주사제 처방 권장치(17.2%)보다 네배 이상 높은 한국의 주사제 처방률(56%)을 들이댔다.

"불편해야 줄어든다" 며 주사제 포함을 밀어붙인 게 복지부였다.

의보 재정 절감문제도 그렇다. 7개월 이상 병원과 약국을 오가며 주사제를 맞은 까닭에 환자들은 본인 부담금으로 5백억원을, 의보재정은 1천5백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어찌됐든 2천억원이 더 들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날 그간의 정책 시행착오에 대해 한 마디의 해명도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란 사실을 복지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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