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는 돌봐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의사들이 어제 집단 폐업에 들어가면서 우려했던 대로 심각한 혼란상태가 빚어졌다.

동네 개인 병.의원이 대부분 문을 닫은 가운데 대학병원.공공의료원 등이 수련의 이탈 속에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지만 응급환자조차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의료대란이 발생했다.

교통사고 중환자가 의사를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가 하면,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병원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폐업을 앞둔 의사의 권유로 조기 출산한 신생아가 호흡곤란으로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폐업이 예고됐던데다 첫날이라 일반 외래환자들이 고통을 겪는 사태는 없었지만 폐업사태가 며칠만 더 계속되면 혼란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 뻔하다.

과거 일본처럼 직접적인 사망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의대 교수들도 22일을 시한으로 납득할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어서 의료마비가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다시 한번 의사들의 자제를 촉구한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올바르고, 그들의 입장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환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은 국민건강 차원의 의료대란이 아니라 국민을 위험 속에 빠뜨리는 국가대란이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최소한의 기본도리는 지켜주길 바란다. 이 정도면 의료계의 불만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본다.

어차피 국민과 정부와 약계 등 상대가 있는 문제인데 환자는 돌보면서 투쟁과 협상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는 이번 사태로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과 해결방안이 재확인됐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세운 건 의약분업 내용이지만 속에 감춰진 건 ´밥그릇´ 크기다.

제대로 된 의약분업이라는 명분뿐이라면 어찌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가며 극한투쟁에 나서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비난할 생각도 없거니와, 이 문제가 공론화돼 해결되기 전에는 의약분업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빠져든다.

이제 와서 의약분업을 미룰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번에 안되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해결책은 의사와 약사의 적정 수입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분업안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국민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선진국의 선례 등을 참고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다.

특히 수입과 관련해서는 의약계가 전문가집단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된다.

더 이상 핵심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의료계는 병원 문을 다시 열고, 약계는 섣부른 대응을 삼가기 바란다.

정부도 적당히 타협하고 밀어붙이려는 자세를 버리고 모든 장애물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설득력있는 대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국민 앞에서 정부와 의약계가 발가벗는 자세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의약분업이 가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