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결의 병원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20일 집단 진료거부를 앞두고 서울 등 전국의 대형 병원들이 지난 17일부터 장기입원이 예상되는 환자의 입원을 거부하거나 입원 중인 환자를 강제 퇴원시키고 있다.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우려, 시민들이 약국으로 몰려가 약사재기 소동이 빚어지고 있다.

◇ 강제퇴원.입원거부〓서울 S대병원 응급실은 지난 17일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퇴원을 권유하고 있다.

20일 이후까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은 받지 않고 있다.

다발성 신경염이 재발해 18일 오전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급히 상경, 병원을 찾은 金모(23) 씨는 "병원측이 소견서를 써줄테니 다른 국.공립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고 난감해했다.

간경화 증세가 악화돼 18일 새벽 병원으로 실려온 朴모(56) 씨도 "응급실에서는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라는데 수속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朴씨의 부인은 "환자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입원이 안된다니 말도 안된다. 폐업만은 자제해 달라" 고 말했다

또 이 병원에선 20일 이후 잡혀있던 진료예약을 취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 환자들이 일단 응급실로 들어온 뒤 "이곳에서라도 계속 치료를 받겠다" 며 퇴원을 거부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서울 강북 S병원에서는 지난달 고혈압으로 쓰러져 입원했던 金모(69) 씨의 가족들이 "지난주 초부터 원무과 직원들과 의사들이 퇴원을 종용해 1주일을 버티다 마지못해 18일 퇴원수속을 밟았다" 며 "병원측은 음식물은커녕 아직 거동도 못하는 환자에게 ´위급해지면 다시 응급실로 오라´ 고만 하고 있다" 고 말했다.

평소 6인실이 나려면 최소한 한달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서울 신촌 S종합병원은 현재 6인실의 경우 1~2개, 2인실의 경우 1개 이상 병상이 비어있다.

이 병원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崔모(29) 씨는 "외래에서 입원을 시키지 않아 빈 병상이 평소보다 많다" 고 설명했다.

인천 I대병원의 경우 중환자를 제외한 신규 환자등록을 보류하고 있으며, 전공의 2백84명 전원이 사퇴서를 일괄 제출해 정상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환자 보호자로 병원을 찾은 鄭모(54) 씨는 "병원이 폐업하는 동안 환자들의 병이 더 깊어지면 어떡하냐" 고 걱정했다.

◇ 환자.보호자 반발〓아들이 급성위염으로 서울 신촌 S종합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河모(58) 씨는 "폐업하면 당장 치료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걱정" 이라며 "병원 분위기가 온통 뒤숭숭해 불안하다" 고 밝혔다.

서울 J종합병원 환자.보호자들도 이 병원 전공의협의회가 병원 곳곳에 내붙인 ´전공의가 환자.보호자님께 드리는 호소문´ 이란 3장짜리 대자보를 읽고 불안한 분위기였다.

대자보는 "6월 20일이면 전국의 병원이 문을 닫게 된다.

밤샘 토론 끝에 정부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결론에 도달, 사표를 내기로 했다" 며 "부디 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과속운전도 하지 마십시오. 교통사고가 나서도, 열이 나도 치료할 의사가 없습니다" 고 적어놨다.

◇ 약 사재기〓고혈압.심장병.당뇨병 등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은 대거 약국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대형약국이 밀집한 서울 종로5가 약국들의 경우 주말에 몰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D약국 약사는 "최근 2주 동안 10만원어치 이상 한꺼번에 구입하는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 며 "특히 심장병 치료제의 경우 한달에 1~2개 나가던 것이 지금은 하루에 5~6개씩 팔기도 한다" 고 밝혔다.

서울 S대 병원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1주일 전부터 혈압약.심장약 등을 대량으로 구입해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며 "일부 제약회사들이 이 틈을 타 약값을 슬그머니 올리고 있어 몇몇 약품의 경우 도매상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 전했다.

전진배.박현선.우상균.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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