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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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 정월 초하루부터 전화시분제가 실시된다. 시분제란 일정 통화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요금이 갑절로 오르는 제도를 말한다. 체신당국은 그 시간을 3분으로 잡고있다. 지금은 시내전화 한 통화에 25원, 내년부터는 3분이 지날 때마다 25원씩 추가된다.
체신부가 발행한 『전화백서』 를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시내 전화평균통화시간은 1분33초다. 그 시간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년 동안에 14초나 짧아졌다는 통계도 있었다.
세상은 점점 바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화 속의 한국 사람들은 수다스러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실제로 어떤 외국인은 한국친구와 전화를 걸면 머릿말이 너무 길다는 얘기를 한다. 본인은 물론 부모, 처자, 친구들의 안부를 두루 묻고야 비로소 본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흉을 잡는 말이겠지만 우리는 그 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사람 사는 동네에 그만한 정분은 있을 만 하다. 도리어 미덕일수도 있다.
미국사람들의 평균통화시간은 54초, 영국은 50초, 프랑스는 56초로 집계되고 있다. 필경 그 나라의 라이프 사이클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만 해도 취업인구의 반반이 남녀다. 여자의 사회진출이 그만큼 많다. 최근엔 오히려 여자쪽 취업인구가 남자를 앞섰다는 통계도 있었다. 그 나라에선 주부가 한가하게 집에서 차를 마시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증권시세를 얘기할 겨를이 없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우리 나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직장에서 전화를 걸고 사담을 늘어놓는 직업모럴은 외국에선 보기 어렵다. 우리가 일상중에 경험하는 것은 한창 바쁜 민원창구에 앉은 직원이 한가한 전화를 걸고 있는 경우다.
그렇다고 내년부터 당장 실시할 시분제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통계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는 우리 나름의 생활습관이 있다.
전화문화에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데 3분 통화는 너무 짧다. 평균 통화시간이 1분도 안되는 유럽에서도 4∼6분 시분제를 채택하고 있다.
차라리 우리는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전화통화 피크타임에만 3분 시분제를 적용하는 것은 어떤가. 시분제가 공연히 국민의 부담만 늘려 체신부의 금고만 배부르게 해준다면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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