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가 결정에 배려할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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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곡유통위원회가 올해 추곡수매가 인상폭을 통일계 신품종은 11%, 일반미는 13%로 할 것을 건의했다. 또 수매량은 정부가 당초 예시했던 통일계 5백50만 섬 외에 일반미 3백만∼4백만 섬을 추가로 더 수매토록 요구했다.
추곡수매가 결정문제는 농가의 소득보장에 직결되는 동시에 도시소비자들의 생계비 부담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정부의 한자리수 정책의 시금석이 된다는 사정 등이 맞물려 당면한 최대의 난제로 꼽혀온 것인데 이번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로 일단 기준은 제시된 셈이다.
그러나 이 건의안은 어디까지나 논의의 출발에 불과하고 앞으로 정부안의 결정과 국회의 심의과정을 통해 보다 활발하고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이번 양곡유통위원회 건의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인상률이 그동안 농민단체나 농협 대의원대회가 제시한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대신 수매량은 정부가 예시했던 물량 외에 3백만∼4백만 섬을 더 사들이라고 한 점이다.
이로 미루어 이 건의안의 취지는 추곡수매가의 물가파급효과 등을 감안, 인상률은 억제하되 물량확대로 이를 보완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통일계와 일반미에 차등을 둔 것은 통일계보다 단위생산량이 적은 일반미 생산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수요가 적은 통일계보다 품질이 좋은 일반미 쪽으로 생산을 유도해 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
동시에 정부의 한자리수 억제정책은 무리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건의안이 제시한 구체적 숫자의 당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려 한다. 그것은 쌀 생산비나 적정이윤의 상대적 비교, 정부재정 사정 등에 대한 보다 기술적이고 깊이 있는 검증이 필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양곡유통위원회가 이번 건의안을 통해 제시한 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물론 양곡유통위원회의 이번 건의가 농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만족스러운 내용이 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사실 도시근로자 임금인상률이 18.4%에 이르고 농촌 노임도 하루 9천원 대에서 1만5천원 대로 크게 올라 쌀 생산비에 압박을 가하는 데다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계소득의 89%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정 등을 감안하면 추곡수매가 인상률 11∼13%선은 지나지게 낮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안이 담고 있는 취지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농민들의 입장에서도 가격의 대폭 인상보다 수매물량을 늘리는 것이 혜택을 받는 층을 넓힌다는 점에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농가경제도 전체 국가경제의 틀을 벗어나서는 제대로 설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추곡가의 대폭 인상이 일반 물가를 자극, 생필품의 가격이 덩달아 오를 경우 그 피해는 농민 자신에게도 돌아간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농업발전차원에서 볼 때도 쌀 소비는 계속 줄고 있는데 쌀 생산량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 결코 바람직스럽다고만은 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재정부담으로 쌀 생산을 계속 부추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으로 정부나 국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한때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는 어떤 선택이 장기적으로 농민을 위하고 국가경제를 위하는 길인가를 깊이 생각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차제에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정부의 추곡수매정책이 소득보장적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대농보다는 영세농으로 수매대상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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