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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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문명비평가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값진 사과가 세 개 있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하나는 아담이 먹다 목에 걸린 사과요, 또 하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요, 나머지 하나는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쏘아 맞힌 빌헬름 텔의 사과다.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 아담은 그의 갈비뼈 하나로 빚어 만든 이브와 한 몸이 되었지만 뱀(사탄)의 유혹으로 금단의 과실(사과)을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된다.
아담의 사과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 반면 고향 울즈소프의 과수원에서 사색하다가 우연히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익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한 기계』라는 원리를 터득한 뉴턴의 사과는 인류에 자연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빛나는 사과다.
그런가 하면 빌헬름 텔의 사과는 침략자의 압제와 불의에 항거한 가장 용기 있는 사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사과가 사람의 상징으로 나온다. 아름다운 아틀란타 공주는 그에게 청혼하는 뭇 남성들에게 경주를 신청하고 이기면 결혼을 승낙하지만 지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그래서 아무도 선뜻 청혼을 못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청년 메일라니온에게 사과 세 개를 주어 경주에 응하게 한다. 경기가 벌어지던 날 메일라니온은 아틀란타가 자기보다 앞서려 하면 사과를 하나씩 던졌다. 그 사과를 줍다가 결국 아틀란타는 경주에서 졌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립된 것은 물론이다.
엊그제 신문을 보면 방미중인 노태우 대통령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미국의 조급한 통상압력을 빗대어 이런 농담을 했다. 『사과가 덜 익었을 때 따먹으면 시어서 못 먹거나 먹어도 배탈이 나지만 다 익은 뒤 따먹으면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다』고.
오늘 우리의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한국의 사과」는 아직 여물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미국으로서는 그것이 자칫 아담의 사과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의 사과, 뉴턴의 사과가 되려면 더욱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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