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도시로 가려는 농어촌 선생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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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대법원이 교사들의 타지역 임용고시 응시를 제한하는 현행 제도를 위헌으로 판결하자 인터넷 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당연한 판결이라는 지지의 글과 지역사정을 무시하는 판결이라는 반대의 글이 각각 등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서울시 교육청은 응시 제한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고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도 형식상으론 폐지를 위한 수순밟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타 지역 임용시험 응시자들에게 면접 등 어떤 형식으로든 불이익을 줄 것으로 보도되자 다시 인터넷 게시판이 요란스럽다.

지방의 한 교사가 응시제한 규정의 부당성을 제기함으로써 시작된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는 과정에서 전국 교사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농어촌의 지방교사들은 "잘 하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 서울 등 대도시의 교사들은 "이러다간 지방교사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에서 소송 진행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그같은 지방-도시지역 교사들 간의 이해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교사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자꾸만 피폐해져 가는 농어촌 교육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정책적 문제가 걸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법리적 차원에서 보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육문제는 법리적 차원에서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0년, 현직교사가 타 시.도 임용고사에 응시할 경우 '퇴직 후 2년이 지나야 된다'는 제한규정을 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농어촌 교사들의 이탈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응시 제한규정이라는 궁여지책을 도입해야 할 만큼 지방의 교사 수급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호전된 것도 아니고, 지방 교사수급에 대한 대책도 마련치 못한 상태에서 타 지역 임용고시 응시가 허용이 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대도시로 이탈하고자 하는 지방교사들의 행렬이 봇물 터지듯 이어질 것이다. 지방에서 이미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기간제 교사.계약제 교사제도 한 방법일 것이다. 기간제 교사라고 하여 교육능력이 없고 또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해서 꼭 교육능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교육을 수행하는 교사들이 자기 정체성이나 안정성을 갖지 못한다면 자칫 교육 자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농어촌 교사들이 원한다고 다들 대도시로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타지역 임용고사 응시의 길이 열렸으니 대도시를 해바라기하는 교사,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교사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더욱 더 지방 교육의 현장은 파괴되고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이라는 교육의 근간도 무너질 것이다.

그 위에 땜질처방으로 널뛰기 하는 지방 교육정책,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의 심화까지 초래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교육은 실패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다. 급한 불 먼저 끄듯이 농어촌 교사에게 특혜를 주는 등 지방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단기적 대응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원양성 임용 수급정책을 근원부터 반성하는 일이 더 절실하다.

매년 그 폐해와 문제점이 지적되어 온 임용제도, 대도시로의 교사 유출, 구멍난 교사 법정 정원, 그 와중에 미임용자들의 적체현상까지, 이 모든 문제는 근원적으로 교원정책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래도 해결의 실마리는 포괄적인 논의구조를 구축하고 정부가 장기적인 전망에서 교원정책을 세우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백년지대계의 최소 조건인 교사확보를 땜질처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순애 제주문화포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