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초보 감독 '싸나이 최병식' 선배와 의리 걸고 '지옥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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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3월 14일입니다.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은 최병식(40)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전임 이문규 감독이 겨울리그 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데 따른 조치였죠. 그런데 최 감독의 대답은 "감사합니다"가 아니었다네요.

"저도 관두겠습니다."

구단에서는 놀랐지만 최 감독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고 합니다. 최 감독의 연세대, 실업농구 현대 시절 선후배들은 그를 "의리에 목을 매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최 감독은 놀고 있던 자신을 불러 코치로 기용한 이문규 감독과 운명을 같이하고 싶었나 봐요. 이 감독은 실업농구 현대 시절의 선배죠.

최 감독은 짐을 싸놓고 이 감독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 감독이 "너마저 나오면 어떡하느냐. 팀에 대해 뭘 알아야 성적을 내지. 여름리그에서 국민은행이 못하면 내가 한 번 더 욕을 먹는다"고 말렸답니다. 그래도 최 감독은 고집불통. 이 감독이 욕을 섞어가며 '선배 말'임을 강조한 뒤에야 겨우 입을 열더라네요.

"알았습니다."

쌌던 짐을 풀고 호루라기를 문 최 감독. 정말 잘 해냈죠. 겨울리그엔 플레이오프에도 못 갔던 팀이 정규리그를 제패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했잖아요. 물론 걸출한 센터 마리아 스테파노바 덕을 봤죠. 그러나 확실히 겨울리그 때와는 다른 활기차고 의욕에 넘친 국민은행의 농구. 이건 최 감독이 만든 겁니다.

최 감독은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붙임성이 좋아 늘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요. 챔피언결정전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선후배와 동기들이 경기장을 찾아가 응원했어요. 이영주(신한은행 감독).김광(KCC 코치) 같은 실업농구 현역 시절의 동기.후배와 마산고 동기 강을준(명지대 감독) 등이 눈에 띄더군요.

최 감독은 술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런 '한량'이 어떻게 두 달 동안 숙소와 체육관에만 틀어박혀 있었을까요? 정선민을 비롯한 국민은행 선수들은 "정말 지옥 같은 훈련을 이겨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최 감독은 여름리그가 끝나자마자 "일주일만 쉬고 또 지옥이다"라고 선언했어요. 국민은행 선수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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