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전문직·고소득자영업자 세금탈루 '꼼짝마'?

중앙일보

입력

"연 수입금액이 7500만원 미만으로 현재 복식부기의무가 면제되고 있는 전문직이 몇 명이나 됩니까?"(기자)

"변호사, 의사 등 업종별로 관리되고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습니다."(재경부 세제실 관계자)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원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공평과세 실현'을 강조했으나 그 결과는 언제나 말뿐이었다. 이 때문에 증세 논란이 불거질 때마마 '유리알 지갑'으로 통하는 월급쟁이들은 '우리가 봉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연초부터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세정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던 참여정부가 27일 마침내 작품(?)을 내놓았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정책토론회 자료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사실상 정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조세연구원이 태스크포스를 통해 함께 '세원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방안에는 △ 사업용계좌 도입과 전문직 복식부기기장 의무화 △ 현금거래 노출 강화 △ 신용카드 사용·현금영수증 발급의무화 △ 악의적 탈세자 가산세 강화 등이 담겨 있다. 이 방안대로 시행된다면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는 등 강도높은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에 가급적 '세원투명성 제고 방안'을 모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이번 방안이 모두 입법화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전문직·고소득자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 전문직 타깃…사업용계좌도입·복식부기의무

이번 세원투명성 제고 방안은 60만명의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소득파악이 미흡했던 자료상, 영세사업자로 위장한 고소득 자영사업자, 집단상가 등 무자료 거래 사업자, 호화 유흥업소 등 음성탈루소득자, 전문직 사업자 및 고소득 자영업자 등이 주요 대상이라는 것.

조세연구원은 전체 사업자 436만명(2004년기준)의 약 14%에 해당하는 60만명 내외가 적용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사업용 계좌 도입과 변호사 등 전문직 사업자에 대한 복식부기 의무 부과다.

정부와 조세연구원은 개인사업자중 복식부기의무자부터 '사용용 계좌'를 우선 적용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변호사와 의사, 변리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건축사, 감평사 등 전문직에 대해서는 수입금액에 상관없이 복식부기의무를 부여키로 했다.

전문직에 대해 복식부기가 의무화되면 모든 전문직 사업자는 자동적으로 사업용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문직들은 소득을 탈루하기가 어렵게 된다.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 상당부분 복식부기와 사업용계좌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 두마리 토끼 잡겠다…사회적 감시기능 활성화

이번 방안에서는 근로자 소득공제 확대를 통해 전문직의 소득 파악률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모든 의료비에 대한 소득공제와 직불카드에 대한 소득공제율 확대다.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전문직에 대한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근로자 세부담 경감과 전문직 수입금액 자료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세무행정 등 사후관리 강화책과 사회적 감시기능 활성화 방안도 내놓았다. 악의적인 탈세자에 대해서는 가산세를 40~70%수준으로 강화하고, 탈세제보 포상금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 입법 잘될까…문제는 없나

이번 방안은 '세원 투명성' 측면에서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을 대부분 담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이번 세원투명성 제고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자영사업자의 소득파악률이 현재 50%대 수준에서 오는 2015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80%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방안대로 입법이 이뤄진다면 선진국 수준의 세원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입법이다.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변호사와 의사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입법 저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사익 침해'가 이들이 내세울 논리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있는 이들 집단의 반발에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입법 여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세원 투명성 제고로 인해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세부담 상한제' 확대 시행으로 이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세부담도 늘어날 수 밖에 없어 이들의 반발도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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