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사태 분수령 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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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중동을 순방하는 가운데 2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릴 예정인 '중동평화 유럽-아랍 국제회의'가 레바논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회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휴전을 이끌어 내기 위한 서방과 아랍권이 마련한 첫 대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라이스 장관, 프랑스.영국 등 유럽연합(EU) 주요국,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의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다.

아난 사무총장은 18개국 300여 명의 대표단이 참가할 회의에 앞서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중단과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중재안을 마련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재안에는 휴전과 국제평화유지군 배치, 헤즈볼라에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 2명 석방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압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중동권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라이스 장관은 25일 레바논 총리와 국회의장을 만나 납치 병사 석방, 국경 이북 30㎞ 선으로 헤즈볼라 철수, 평화유지군 배치 등을 휴전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와 같은 시아파 무슬림(이슬람 교도)인 나비 베리 의회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라이스 장관과 만난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석방돼야 휴전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25일 밝혔다.

이런 가운데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거점을 차례차례 점령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과의 국경에서 8㎞ 떨어진 지점까지 진군했다"25일 보도했다. 인명 피해도 계속 늘어 지금까지 레바논에선 391명이 사망하고 1600여 명이 부상했으며, 이스라엘에선 4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날 타리크 미트리 레바논 문화장관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서한을 보내 "바알박 등 레바논의 고대 유적들이 계속되는 폭격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며 개입을 요청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알박에는 유명한 주피터 신전을 비롯한 2000년 전 로마 유적이 곳곳에 있다. 바알박 시내와 주변 지역에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지금까지 35명이 사망하고 헤즈볼라의 거점 등 수십 채의 건물이 파괴됐다. 20일에는 24t짜리 폭탄이 시내 중심지에 떨어져 인근 유적이 흔들리기도 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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