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생산, 양보다 질 쪽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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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확기를 맞아 쌀의 재고누증 문제가 어려운 정책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농림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정부미 재고량만 9백70여만 섬에 달하며 농가 재고분 1백50만 섬을 합하면 무려 1천1백20여 만섬에 이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정부가 사들이기로 예시한 5백50만 섬을 합하면 정부 보유미만 1천5백만 섬에 달해 이중곡가제 실시에 따른 재정부담은 물론 재고 미의 보관비용만도 적지 않은 금액에 달하리란 얘기다. 뿐만 아니라 올해 작황이 평년작 수준을 웃돌 것이 거의 확실해 곡가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의 차질도 심각한 문제로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쌀 막걸리의 허용, 학교급식의 미곡전환 등 쌀 소비 촉진책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고 민정당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농지의 축소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 당장은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올해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의 결정에도 재고 미 누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그런 만큼 쌀 재고문제를 단순히 재고처리 혹은 소비 촉진책의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차제에 포괄적인 주곡정책을 농정의 근본방향과 관련지어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것은 지금 표면화되고 있는 쌀 재고문제가 올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외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득 불균형의 시정, 지역간 격차해소문제 등과도 결코 무관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민정당이 장기대책의 일환으로 농지의 축소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 그 내용의 찬반은 별문제로 하고 시야를 넓혀 접근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그 자세를 평가하고자 한다.
우리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그 동안 신품종 벼의 보급과 이중곡가제의 실시, 농업생산기반의 정비 등으로 쌀의 생산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라섬으로써 조금만 기상 여건이 좋아도 풍년을 구가하게 되고 재고가 생기는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기존의 증산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정부의 가격지지 정책과 수확량의 증가로 벼농사의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논의 경지면적이 해마다 늘어 재고누증 위는 증산이란 상황이 앞으로도 해소되기 어렵다는 예측이 문제의 심각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논의 자체를 마치 주곡의 생산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발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듯 하나 재고의 누증은 재정부담을 가중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농가의 소득감소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같으면 단경기 였을 9월의 일반미 산지 쌀값이 작년의 추곡수매가를 밑돎으로써 비싼 값을 기대하고 쌀을 보유해온 농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다만 주곡정책을 논의하는데는 1차로 쌀의 자급이 국민의 생존기반이며 안보차원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인이라는 점, 그리고 농가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그리고 농가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대전제가 돼야한다. 그런 만큼 우리가 주곡의 자급기반을 안정적으로 갖추었느냐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할 것임은 물론이다.
쌀 생산은 앞으로 양보다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높아 가는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미국 쌀을 미군부대를 통해 밀 반입하는 현상을 보면 보다 공해가 적고 질 높은 쌀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그리고 쌀의 재고문제 해결은 쌀의 소비에 관한 규제부터 과감히 풀고 시간을 두어 우리의 자급기반 확보 여부를 검증한 뒤 경지문제나 이중곡가제 문제 등을 장기적 과제로 검토해 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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