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김」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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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계 소련인 막심 김 교수는 1909년 노령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30년 모스크바에 와 금년으로 모스크바 생활 60년째인 김 교수는 자신의 모국어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의 선친은 19세기말 함경도의 두만강 가 조그만 마을에서 살다가 가난을 견디다 못해 16세 때 가족들과 연해주 땅을 밟았다.
34년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김 교수는 학문의 길을 택해 이 대학의 역사·철학 및 문학연구소에 적을 두고 여러 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소비에트 역사를 강의했다.
35년 모스크바 동방대학교 사회·정치학부 교수가 된 그는 극동지역에서 온 코민테른 및 프로핀테른 간부들에게 일본사와 한국사를 강의했다. 일본을 경계해온 스탈린은 36년 대숙청을 시작하면서 소련 내 동양인들을 탄압하기 시작, 김 교수도 이때 탄압을 받았다. 그는 모스크바 동방대학에 입학한 일본인 공산주의자들과 친했는데, 그중 일부가 일본첩자로 몰리는 바람에 김 교수도 당에서 축출되고 학교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다음해 당은 그를 다시 심사, 복권시켰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다시는 동방역사를 연구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후 김 교수는 일반역사와 소련현대사 및 소련공산당사를 연구, 51년 소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교수로 부임하게 됐으며 그후 줄곧 이곳에 재직해오고 있다.
59년 과학아카데미 후보 원사가 된 김 교수는 20년만 인 지난 79년 소련과학아카데미 총회에서 정원사로 선출됐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원사는 소련의 일반 공직과는 달리 종신직이며,그 대우 또한 최상급. 소련인 평균 급료의 5배인 1천루블 내외의 월급 외에 다차(별장), 그리고 자동차가 주어진다.
두 달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상품전을 참관하고 남한의 발전상에 깜짝 놀랐다는 김 교수는 서울에서 열릴 이번 한민족체육대회를「세계사적 의미의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민족성이야말로 인간 생리의 기본이며 극히 공정한 표현·형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김 교수는 재모스크바 한인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오늘날 소련에 사는 한인들의 존재를 역사학자답게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심장으로는 한인이고, 정신적으로 러시아인이며, 근본적으로 소련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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