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세습' 논란… "조기 퇴직자 자녀 우선채용" 에쓰오일 작년 노사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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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이 지난해 노사 단체협약 협상에서 공장 근로자가 중도 퇴직할 경우 퇴직 근로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단체협상을 하고 있는 SK㈜ 노조도 사측에 퇴직 근로자 자녀 의무 채용을 요구 중이어서 고용 세습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 세습은 일반 구직자의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23일 "노조 측 요구에 따라 퇴직한 생산직 근로자 자녀에게 입사 결격 사유가 없을 경우 우선 채용하기로 지난해 단체협약에 명문화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아직 실제 고용 승계가 이뤄진 바는 없으며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정년을 3년 이상 남긴 근로자가 구조조정으로 퇴사했을 경우 등을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SK㈜ 노조도 최근 고용 세습과 관련한 조항을 단체협약안에 넣어 사측에 전달했다. '생산직 근로자가 강제 구조조정을 당하면 그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이 회사 임명호 노조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가 협상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해 방어 차원에서 내세운 것"이라며 "원래 노조 협상안에는 없던 내용이며 꼭 관철하겠다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SK㈜는 이미 '업무상 재해를 입은 퇴직자의 경우 직계 가족의 채용에 있어 자격이 구비되었을 시 우선 채용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퇴직 근로자 자녀 의무 채용'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경대 법학과 김광록 교수는 "취업난이 심각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조기 퇴직자의 자녀에 대한 고용 승계는 일반인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어서 형평성에 크게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김정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도 "일자리를 애타게 구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고용 세습 요구는 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SK㈜.에쓰오일 등은 인기 있는 고소득 직장이다. 지난해 SK㈜의 직원 평균 연봉(사무직 포함)은 6600만원, 에쓰오일은 5800만원이었다. 지난해 네 차례 생산직 근로자를 뽑은 SK㈜의 경우 입사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구인난을 겪는 일부 업종의 경우는 퇴직자 자녀 고용 승계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성신여대 경영학과 박준성 교수는 "연봉이 높은 희망퇴직 대상자가 회사를 나가면 회사는 신규 인력을 2~3명 정도 채용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희망 퇴직을 유도하면서 가구 소득을 보전해 준다는 차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직 취업 희망자가 많지 않은 일본에서는 자녀 우선채용제도가 꽤 실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혁주.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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