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중대 결심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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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기국회를 앞두고 정치권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현재의 4당 구조가 다시 가동되어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느냐, 아니면 상호갈등과 알력속에 정치 실종과 정국 표류를 계속 하느냐의 갈림길에 온 것 같다. 4당 스스로도 더 이상 정치 부재상태를 계속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끼고 내부의 체제정비와 정국타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4당 서로간의 이견과 영등포을 재산거 이후 표면화한 4당 내부의 자체개혁 요구등에 부닥쳐 여전히 혼미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상이다.
말하자면 4당 체제는 지금 밖으로는 대화재개·정치회복을 해야하고 안으로는 자체 개혁외 목소리를 수용하여 체제정비를 해내야 하는 안팎 이중의 과제에 봉착해있는 셈인데 현재로서는 어느 목도 시원스레 해낼 것 같은 기대를 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빨리 이런 방황과 혼미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당장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정기국회마저 정상 운영하기 어려움은 물론 전교조 문제, 5공 청산, 각종 입법문제 등 허다한 현안들을 계속 방치하는 결과가 됨으로써 국정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올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4당이 이제라도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무엇보다도 4당간의 대화를 무조건 즉각 재개해야 한다. 정기국회의 운영일정에 대한 실무 협의를 즉시 착수해야 하고 산적한 할 일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속도감 있게 처리할 수 있도록 중진회담과 같은 고위 정치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4당은 이번 주부터 총무 접촉을 재개하는 모양인데 접촉을 한다면 종전처럼 만나봐야 하나 되는 것 없이 질질 끌기만 하는 접촉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뭔가 알맹이가 있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질적 교섭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시국과 국민여망에 대한 4당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여당은 각종 현안에 대해 분명한 선을 내놔야 한다. 가령 5공 청산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각종 악법은 어느 선에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 더 이상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안을 갖고 야당을 만나야 한다.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5공 청산이 호재라 하여 그것만 물고 늘어질 생각을 말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며 국민을 납득시킬 대안들을 제시하고 대국적 결론을 끌어내되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여론의 화살도 각오하는 신념있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
정당이 당리당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제 4당은 그 당략의 수준을 좀 높이고 당리의 추구에 있어서도 명분과 합리성을 좀 더 갖출 줄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일은 각 정당 내부의 자체개혁 움직임이다. 우리는 이런 개혁의 노력이 진작 나왔어야 한다고 보며 각 정당은 이런 목소리를 과감히 수용, 자기 쇄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낡은 사고방식, 낡은 감각과 통찰력도, 경륜도 그저 그 수준인 4당의 현 체제로는 오늘의 정치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4당은 내부의 개혁 목소리를 지도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분파작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체질개선과 자체 정치력 강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다. 그런 자기갱신의 능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결국 무력과 도태의 길로 들어서게 될 뿐이다.
4당은 지금이 정치 복원과 자기개혁의 중대한 시점임을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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