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 실시의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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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토지공개념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당초 부동산투기 억제 차원에서 출발한 재산세과표 현실화, 토지종합과세, 택지상한제, 개발이익 환수제등의 토지관련 규제조치 문제가 경제정의의 실현이라는 승화된 논리로 정리되고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계약자유와 소유권 보장이라는 자본주의 자본질서를 위협하는 발상이라는 논리로 맞섬으로써 이 문제는 자칫 이념논쟁으로 까지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실 토지에 집착해온 우리 국민의 전통적 소유관념이나 사유재산권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이에 반대하는 이념체제에 대항해 싸워온 우리의 역사적 과정에 비추어 볼때 이 문제는 칼로 무를 베듯 손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단순한 문체가 아니며 폭넓은 논의를 거쳐보다 평범한 국민적 이해와 공감을 얻어야 할 문제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우리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입법조치가 어느 정도 넓은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는 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이들 일련의 입법조치의 취지나 방향에 대해 이론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일을 추진하는 방법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한꺼번에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조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서구 자본주의가 그 원형을 잃지 않으면서 오늘의 복지국가로 정착하기 까지에는 1세기 이상의 긴 갈등과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
본격적인 산업화 사회로 이행하기 시작한지 불과 3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는 아직 초기자본주의의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형평과 배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3년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의 성외과정이 일부 논자가 지적하는대로 압축형 고속성장이었던 만큼 그 과정에서 배태된 부조리와 불균형 외문제도 그만큼 심각하고 내용이 악성이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만큼 그같은 왜곡을 척결하는데 시간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성을 갖고 있음도 사실이다.
사실 한쪽에서는 일생을 뼈빠지게 일해도 집 한칸 마련하기 어려운데 그 바로 앞에서는 아무일도 하는 일없이 부동산 투기로 2억∼3억원의 돈을 챙기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앞에 신축성없는 자유경제 체제나 시장경쟁 원리와 같은 이론은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으며 이같은 왜곡된 경제질서를 바로 잡지 않고는 자유경제 질서자체가 위협받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급격하고 단발적인 혁명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우리가 댁할 유일한 길이라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고, 우리는 그같은 조급성이 자칫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해 우리가 이룩해야 할 개혁의 내용과 시기를 오히려 왜곡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렇게 보는 것은 우선 이번 일련의 조치가 많든 적든 부동산을 소유한 모든 국민을 일단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 계층으로 보고 무차별적·응징적으로 다루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나 건물의 규모를 불문하고 모든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세를 한꺼번에 대폭 올리려 하는 것이라든가 실제 소득으로 현재화되어 있지 않은 개발이익에 90% 전후의 무거운 세금을 매기겠다는 발상은 부동산 투기와 관계없는 대부분 선량한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회의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기업소유 부동산의 맹목적인 제한이나 과중한 세금부담은 자칫 기업의 확장투자의 길을 막고 민간경제 전체의 활력을 죽일 우려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토지공개념의 도입은 우리 경제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고 불가피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추진을 조용한 중산층을 포함한 온 국민의 합의 아래 혁명적이 아닌 단계적인 방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해 가며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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