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성 무너질까" 여 곳곳서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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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계개편추진 움직임이 점점 구체화되는 기색을 보여가면서 정부·민정당을 포함하는 여권내부에 반목과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3일 이종찬 민정당 사무총장이 내각책임제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온 것도 복잡한 여권사정의 일단을 노출한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내각제개헌을 전제한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이 총장이 이와 같이 공공연히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정계개편론자들에 대한 도전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내 세력간의 암투가 시작됐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이 같은 갈등은 곧 정계개편의 첫 난관이 여권 내에 있음을 의미하며 이것이 번져간다면 결국조기 당직개편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총장을 대표로 하는 이른바 당내온건파와 TK(대구·경북)세력이 주축인 강경 주류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이 총장은 대야관계·좌경문제 등에서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보수강경세력 쪽에서는 이것을 개인적 야심만 생각한 인기전술로 간주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고「미움」이 적지 않게 퍼져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이 총장이 정계개편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아예 당 지도부를 공공연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난 7월5일 캐나다 방문도중 박준규 대표가『앞으로 1년반 안에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며 색깔연합에 의한 정책연합·정치공조 등 3단계 보수연합 정계개편안을 제안하자 이 총장은『조급한 추진의사는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박대표의 보수연합촉구가 평민당을 배제한 것으로 해석하고『특정정당을 고립시키는 것은 지역감정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총장이 23일 도산아카데미 연설에서 내각제 시기상조론을 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장이 당내주류 TK세력에 대해 이처럼 도전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데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직개편이 임박했으므로 당직축출에 앞서 미리 명분을 축적한다는 해석,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당 지도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는 해석 등도 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불만의 표시는 아닌 것 같다.
당 지도부가 상정하는 보수연합이 이루어질 경우 자신이 고사할지도 모른다고 보고 그와 같은 사태에 미리부터 대비, 제동을 걸기 위해 독자세력의 구축을 시도하고 독자노선을 천명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경기의 일부원내 세력과 젊은 원외지구당위원장이 지지하고 있고 호남지역 원외도 가세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이 때문에 민정당 내에는 당의 분열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있다.
당내 최대세력인 TK내부에도 갈등이 있다. 대구·경북도지부위원장인 정호용 의원계의 견제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현재의 여소야대 4당 구조가 계속되어서는 안되며 정계구도에 변화가 와야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고있다.
그러나 그는『정계개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하더라도 서두르면 더 많은 것을 줘야한다』고 신중론을 펴고있다.
그는 정계개편추진의 중심에 있는 박준규 대표위원이나 김윤환 총무 등이 너무 서두르는 것을 탐탁잖게 여기는 것이다.
정 의원 측이 성급한 정계개편에 제동을 거는 이유는 이 총장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 정계개편의 조건으로 이른바 5공 핵심인사처리 등 5공 청산이 거론될 경우 제1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수그러진 듯 하지만 광주문제해결의 희생양으로 다시 떠올려질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상당한 장외세력을 형성하고있는 김복동씨도 하나의 변수다. 그의 측근들은 노 대통령의 인척이며 TK이고 군 출신인 그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선 신당을 창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신당의 구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동의대사태를 전후해 군부가 한때 동요했던 것처럼 다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될 경우에는 외부적 충격이 있을 수 있으며 이때 보수신당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를 소신으로 삼고있는 김씨는 여권핵심부가 구상하는 내각제 개헌을 전제한 정계개편에는 회의적이다.
최근 여권주류의 움직임에 노골적인 반대를 표하는 세력들이 또 다른 차원에서 규합되고있는 조짐도 주목할 만 하다.
이른바 5공 잔류파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당내에선 서울·경남의 낙천인사, 5공 핵심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권익현씨가 중심역할을 하는 민우회 (민정당 낙천·낙선전직의원모임)등이 원외에서 그 나름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최근 5공 청산 등 야당주장에 무한정 끌려 다니는 노 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무능하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대항」의 입장에 설 수도 있다는 시사를 보이고있다.
이들은 민정당을 6공 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 보수거대정당으로 변모시키려는 정계개편 움직임을 뒷받침해주는 입장이 아니다.
때문에 여권이나 민정당내 세력들은 난기류가 예상되는 정국기상을 앞두고 제각기 시각과 이해에 따라 여러 갈래로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다른 당과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야할 여권핵심부가 내부 걸림돌에 걸려 주춤하고있는 꼴이다.
노 정부나 민정당 지도부는 정계개편에 앞서 우선 여권을 한 목소리로 모을 수 있는「당내정비」라는 과제에 봉착해있는 셈이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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