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부릴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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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냐의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와 업계, 그리고 정부에서도 부처에 따라 의견이 엇갈려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제각기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내용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업계와 정부내 상공부는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수출부진, 임금상승과 원화절상에 따른 기업의 채산성 악화, 그로 인한 기업투자심리의 위축으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전제아래 환율·금리·수출금융 등의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반해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관료집단과 한국개발연구원 (KDI)등 정부의 영향 아래에 있는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우리 경제가 과거의 과열성장에 뒤이은 불가피한 조정국면을 맞고 있으며 따라서 인위적 경기부양보다는 감량경영으로 이 시기를 넘기며 우리경제의 저항력과 잠재력을 길러놓는 것이 장기적 안목에서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엇갈린 주장의 부부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우선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이처럼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이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은 이 같은 진지한 논의를 통해서만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파악하고 자칫 범하기 쉬운 시행착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경제정책을 마치 정부의 전유물인양 생각하고 무리와 독단을 감행했던 과거의 정책결정 패턴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성숙된 자세를 보이기 시작한 신호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정책결정에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경제민주주의의 첩경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개의 논쟁과정이 그렇듯이 그것이 자기의 위치와 입장만을 염두에 둔 아집으로 일관되고 그것이 실기와 비 능률로 초래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경기논쟁이 소리만 요란하고 하등의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태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책방향을 가름할 논의의 기초가 되는 현실인식에서조차 아직 의견접근을 못보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경제가 지난 3년간의 고속성장의 반동으로 다소간의 침체는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올해 경제운용계획에서도 8%성장과 7백억 달러 수출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상반기중의 경제운용결과 1·4분기 성장률이 5.8%, 그리고 상반기 성장률이 6.6%수준에 그치리란 전망이 나오자 이를 다시 수정해 7.5%성장과 6백80억 달러 수출로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접어들어 이미 2개월 째를 넘기면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사태는 우리 경제가 연초는 물론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조정하면서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모처럼 구축해 놓은 흑자기조가 무너질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논의의 초점이 되고있는 금리·환율·수출금융 지원문제 등 하나 하나의 정책수단에 대해 이를 어떻게 해야 된다는 판단은 유보하려 한다.
그것은 전체 경제운용의 틀 속에서 미묘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고, 하나 하나의 수단을 떼어서 논할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어려운 사태가 명백해지고 있는 만큼 그에 대응할 시책이 시기에 늦지 않게 합일된 정책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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