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실 두 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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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1일 오전8시20분 서울둔촌동 동북고 3학년9반 개학 조회시간.
『B고교처럼 반장을 중심으로 불법 전교조를 물리치는 모습을 볼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새로 배정된 담임교사의 지시에 따라 정상수업에 임하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새로 2명의 담임선생이 나란히 교단에 서있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쑤군덕거리며 실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강린제교장(61)의 훈시를 듣고 있다.
해임 전교조소속 구담임 도진식교사(35·국사)와 학교측이 새 담임으로 배정한 홍춘교사 (50)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온 사이인데도 서로 애써 외면한채 학생쪽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불법노조니, 참교육이니 자세한 뜻은 모르겠지만 이제 얼마남지 않은 고교시절을 정든 도선생님과 보내고 싶을뿐입니다.』
새 담임의 눈치를 살피며「담임아닌 담임」 도교사에게 체력장 응시원서를 제출하는 김모군(18).
9시20분 3학년8반 2교시 국어시간.
새로 발령받은 교사가 첫수업을 하려는 순간 1학기동안 이 학급의 국어를 맡았던 해직교사 도장직씨(35)가 들어오자 학생들의 박수와 환호성 소리에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저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 채용됐습니다. 누굴 밀쳐냈다는 인상을 줄까봐 자리를 피한 것뿐 입니다.
별관2층 생물실험실에는 김모교사(34)등 7명의 신규발령교사들이 「피신」, 난처한 자신들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10시20분 2학년15반 3교시 영어시간.
해임 주형호교사(30)의 수업시간이었으나 동창회측 만류와 면담요청으로 할수 없게 되자신규발령 교사도 없이 학생들은 주인 잃은 양처럼 이리저리 쏠리며 자습시간을 때우고 있다. 『선생님들끼리 편싸움하는 것 같아 저희들이 더 불편해요. 우린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분별할 줄도 알아요. 전교조와 동창회에서 각각 나눠준 유인물 2장을 펼쳐든 조모군(17)은 개학 첫날 친구들과 방학동안의 화제보다 「선생님 얘기」로 꽃을 피웠다. <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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