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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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선생은 교탁 옆에서 왼다리를 하고 앉아 있고, 또 다른 선생은 한발 옆에 서 있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표정이라니 보기에도 민망하다. 어떤 학생은 머리를 숙이고 있고, 어떤 학생은 물끄러미 선생을 쳐다보고 있다. 몸을 뒤틀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신문 사진에서도 그런 표정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21일, 개학 첫날을 맞은 서울 동북고등학교 3학년9반의 광경이었다.
한 선생은 새로 부임한 담임교사였고, 다른 한 선생은 전교조 파동으로 교단에서 밀려난 전임 담임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교단에 이들이 나란히 나타났으니 학생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느 학교에서 퇴직교사가 이른바 출근투쟁을 하기 위해 교실에 나타나자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고도 한다. 지방에선 학생들의 술렁거림이 심상치 않아 개학을 늦추었다는 학교도 있었다.
한 교실에 두 사람의 담임교사가 서있는 것은 마치 한 집안에 두 아버지가 있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어색한 정도를 넘어 말이 안 된다. 선생도 선생이지만 그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참교육」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묻고싶다.
학교는 학교대로 황폐해졌다. 교장의 위신도, 교사와의 관계도 거의 무너진 상태다.
교사와 교사의 사이 역시 마찬가지다. 전교조 가입교사와 냉담 교사의 사이는 깊은 골이 없을 수 없게 되었다. 학생과 교사의 사이도 그렇다. 학생들도 어느 편을 들게 되면 사제사이는 벌써 멀어진 것이다.
교육의 근본은 인간교육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무슨 명분을 들이대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그 인간교육의 현장에서 인간관계가 뒤죽박죽이 되고, 헝클어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와텐버그와 레들이라는 교육학자는 교사의 심리적인 역할을 무려 14가지로 설명한 일이 있었다. 사회 대표자, 판단자, 지식자원 공급자, 학습의 조력자, 심판자, 훈육자, 학생들의 동일화대상, 불안제거자, 자아옹호자, 집단지도자, 부모대행자, 적대감정의 표적, 친구, 애정 상대자.
오늘 우리의 어지러운 교육현실은 교사들이 교사다움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에서부터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학교의 안정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학교안정 없이「참교육」이 따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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