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미에 홀린 돈 미술 시장의 세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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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앤디 워홀 작
‘자화상(Self-Portrait)’(얼굴)을
100달러 지폐와 합성한 그래픽.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원제:I Bought Andy Warhol)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444쪽, 1만7000원

198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세계미술시장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미술품 값은 급등에 급등을 거듭해 구입가의 10배가 넘게 뛰는 것이 다반사였다. 한 마디로 '그림 투기'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90년대로 접어든 뒤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미술품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 중 하나로 꼽힌다. 뉴욕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이 시간에도 미래의 10배, 100배를 꿈꾸는 컬렉터들의 발길로 붐비고 있다.

왜 사람들은 미술품을 살까. 경매인이 내려치는 망치 소리에 일희일비하는 컬렉터들의 심리 속에는 대관절 무엇이 숨어있을까. 앤디 워홀의 작품을 사겠다는 일념으로 80년대 미국 미술시장을 누볐던 화상이자 지은이 리처드 폴스키는 미술품 컬렉션의 묘미에 대해 "미술품은 마지막 럭셔리다. 누구나 비싼 차는 살 수 있지만 워홀의 '마오'는 오직 한 사람만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폴스키에 따르면 "좋은 미술품은 내 집에 오는 손님들의 뇌리 속에 내가 돈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것을 갖췄다"는 사실을 입력시켜준다. 바로 심미안과 교양이다. 지은이가 12년간 워홀 작품을 사겠다고 쫓아다닌 이유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뉴욕 딜러들이 은근히 무시하는 캘리포니아 지역 딜러로서 최고급 딜러들의 클럽에 명함이라도 내밀기 위해서는 유명 미술가의 주요 작품을 취급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한 화상의 땀냄새 나는 '워홀 찾기'를 통해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뉴욕 미술계를 둘러싼 욕망의 현장을 시시콜콜하게, 또 흥미진진하게 리포트한다.

워홀은 당시 "미술계의 거의 모든 인사들이 언젠가 그의 작품을 샀거나, 팔았거나, 그에 관한 글을 썼거나, 그의 전시를 기획했거나, 그에 관한 책을 읽었거나, 그의 영화나 전시를 봤거나 전설적 디스코클럽 '스튜디오 54'에서 그를 만났거나" 했을 정도로 상징적 존재였다. 워홀은 자신의 화실을 '팩토리(공장)'라고 불렀다. 또 조수들을 둬가며 작품을 '제작'했다. 이처럼 현재의 발탁 가능성과 미래의 지속 가치 등을 놓고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현대 작가상(像)이 확립되는 과정을 눈여겨 보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독법이다.

책에는 이밖에 미술동네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있게 읽을 만한 뉴욕 화랑가의 가십성 일화가 즐비하다. 지은이 옆을 휙휙 스쳐지나가는 레오 카스텔리, 이반 카프, 래리 가고시안 등 내로라 하는 뉴욕 아트딜러들의 괴팍한 면면과 투자 안목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심치 않다. 소설처럼 가볍게 읽히는 가운데 일반인이 알기 힘든 미술시장에 대한 설명이 적절히 배합된 점도 돋보인다. 미술품 투자나 미술판의 뒷얘기를 궁금해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반가울 책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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