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일 갈등이 총선에 긍정적’이란 집권당의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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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집권 여당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지난달 30일 한·일 갈등에 대한 원칙적 대응이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소속 의원 전원(128명)에게 보냈다.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에는 “최근 한·일 갈등에 관한 대응은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원칙적 대응을 선호하는 여론에 비추어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 적었다. 또 “단호한 대응을 선호하는 응답이 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하고 높게 나타났다”고도 했다. 이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자 민주연구원은 어제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고 해명했다. 민주연구원을 이끄는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원장이다.

지금 시국이 도대체 어떠한가. 일본이 내일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하면 양국은 경제 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한·일 관계 악화는 악재 중의 악재다. 특히 일본과 관련 있는 기업들과 국민들은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가가 달린 생존의 문제다. 사정이 이러한데 여당의 싱크탱크라는 곳에서 일본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총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앞세우며 표 계산을 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강경 대응 의도가 송두리째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재성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했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 유튜브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한동안 감정적 대응에 앞장섰다. 이어 청와대에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에선 “전쟁과 유사한 경제적 도발을 일으킨 일본이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을 주최할 자격이 없다”는 내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한 발언까지 나왔다. 물론 이해찬 대표가 “스포츠 교류는 별개다. 당 차원에서 반대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 기류가 크게 바뀐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을 본 국민들이 이번 보고서를 접하며 무슨 생각을 하겠나. “일본과 경제 전쟁에 들어가면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어려운 경제도 일본 탓으로 돌릴 수 있어 정부가 강하게 나간다”는 세간의 지적이 의도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