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휴먼골프 <14> 탤런트 이경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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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탤런트 이경진씨가 골프 연습장에서 드라이브샷을 연습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평생 악역 한번 못해 봤어요."

탤런트 이경진씨의 얼굴을 보면 아무래도 악역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골프도 마냥 예쁘게 칠 것만 같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만큼은 거의 무사나 전사 같은 기질을 보여 준다. 이경진씨의 스윙은 매섭다. 자그마한 체구인데 스윙 아크가 크고 임팩트가 아주 강하다. 비거리도 만만치 않다. 퍼팅할 때는 매우 신중하다. 놓치면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그린을 떠나기 전 꼭 다시 한번 연습 퍼팅을 한다.

"아니 경치 구경도 하고 잔디도 밟으면서 그냥 즐겁게 치면 되잖아요."

"그러고 싶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저는 원래 건성건성 하는 건 질색이에요. 그리고 지는 것도 싫어해요."

1975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으니까 벌써 3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최근에는 '별난 여자 별난 남자'라는 TV드라마에서 역시 착한 엄마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물어봤더니 '에바다'라는 특집극이라고 했다. 수녀의 플라토닉 사랑을 그린 내용이다.

"저는 원래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고 한때 수녀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작품에 몰입했었죠. 작품이나 골프나 몰입할 때가 행복하잖아요."

골프를 함께해 보면 성격이 드러난다고 한다. 골프로 확인한 그녀의 성격은 '매우 진지함'이다.

"연예인은 직업 특성상 잘나갈 때는 골프 할 시간이 없어요. 야간촬영에 밥 먹을 시간도 없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일거리가 없어서 몇 개월씩 쉴 때가 있거든요. 이럴 때는 생활이 흔들리고 우울해지고 화가 나기도 하죠."

이경진씨는 바로 이때 골프장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골프가 고맙다고 했다.

"불러주는 곳이 없는 실업자 시절에 촬영장 간다고 생각하면서 골프장에 가면 정말 진지하게 공을 칠 수밖에 없죠. 대충대충 치면 앞으로 좋은 작품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날 렉스필드CC에서 이경진씨는 84타를 쳤다. 핸디캡 조정을 해보니 그날의 우승자였다. 한마디로 '야무진 골프'였다. 연예인 중에 골프로 벤치마킹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이미숙씨가 스윙 폼도 좋고 멋있게 치죠."

내친김에 연기인으로 벤치마킹할 만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최불암 선배가 좋아요, 연기도 잘하시고 인간성도 좋고 존경할 만한 분이죠."

골프란 무엇인가. 흔히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나갈 때 즐기는 것이 골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골프장에는 외로운 사람도 오고 슬럼프에 빠진 사람도 온다. 그래서 골프장을 심신을 연마하는 곳이라고 하는가 보다.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골프장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곳이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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