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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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리 수경이 얼굴을 단 한번만이라도 보게해주세요.』15일 오후4시쯤 서울연건동 서울대병원 정문앞.
딸의 귀환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임수경양의 어머니 김정은씨(53) 는 경찰의 저지로 병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되자 발을 동동굴렀다.
『그 애의 입북소식을 전해들은 이후 한시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는 김씨의 얼굴은 뜬눈으로 밤을 새운듯 무척이나 수척해보였다. 『오늘 새벽 수경이가 돌아오는 꿈을 꿨는데…』라며 말문을 열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정. 『그 애가 북에서 「미국제국주의의…」라고 남한을 비방했다는 얘기는 도저히 믿을수없다. 꼭 만나서 확인해보고싶다.』
일순간 긴 한숨을 내쉰 김씨는 『철부지 어린애의 잘못을 관대히 처분해줬으면 좋겠다』며 얼굴을 두손에 파묻고 흐느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왜 못들어가게 합니까.』입원환자의 출입마저 차단할정도로 삼엄한 경비망 속에서 문병객들이 경찰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배에 간 학생이 돌아왔대.』병원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두런거림들.
같은 시각, 임양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후 본관12층특실병동으로 옮겨졌다. 병실앞을 가로막아선 공안수사관들의 매서운 눈매.
『평온하던 휴일저녁이 갑자기 낯설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군요.』간호원 김모양(22) 의 어리둥절한 표정. 통일 열풍이 휘몰아친 가운데 맞은 해방44년 기넘일인 이날은 분단역사의 원죄가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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