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강경발언의 배경|5공청산 여권내 미묘한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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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동안 공안정국에 가려 잠잠한 것 같던 5공청산문제가 새삼 클로스업되면서 여권내부에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고있다.
광주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돼왔던 정호용의원이 보수강경기류를 업고 『5공은 청산됐다』고 주장하고 나서는가 하면 백담사측에서도 강경한 불만을 터뜨리고 나셨다는 소문이다.
끝없는 5공의 터널에서 헤매고있는 여권과 백담사간의 미묘한 알력이 여야간의 이견과 얽혀 사태해결을 복잡하게 얽어가고 있다.
○…최근 5공청산 문제와 관련해 처음 운을 뗀 것은 지난8일 박준규 민정당대표위원의 TV대담.
박대표는 이 대담에서 『여권은 5공청산이 마무리지어진 것으로 본다』 며 『이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면 역사의 걸림돌이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박대표의 이같은 충격적 발언 배경을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대야협상을 도맡아온, 김윤환 민정당원내총무도『이만하면 됐지 않느냐. 과거에 집착하면 민주화가 안된다』고 동조했다.
김총무는 『마무리를 위해서라면 전전대통령도 증언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않는다니 못하고 있는 것』 이라며 더 이상 협상이 안되면 이것으로 끝내겠다는 것을 강하게 비쳤다.
이러한 여권내 고위당직자들의 잇단 강경 발언을 둘러싸고 그 속셈을 헤아리려는 추측들이 분분하다.
민정-평민간의 속사정이 서로 물러설수 없는 처지임을 파악한 민정당 지도부가 새로운 타협을 시도하려는 애드벌룬이라는 설과 여권내 보수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져 당무마용으로 내놓은 발언이라는 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발언이 터진 뒤 평민당측은 즉각 반발을 보이고 정의원의 사퇴없이는 광주-5공청산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야3당총재회담합의 고수라는 표면적인 원칙천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큰정치」적인 결단을 촉구해 양보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고 공화당은 『전씨는 이미 용서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을 택해야 한다』 며 맞장구를 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민정·민주·공화 3당과 평민당이라는 이분적 구도에 따라 3당 단독으로 5공청산을 마무리하려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그러나 한 고위당직자는 『이문제를·평민당을 젖혀놓고 처리한다고 종결되는건 아니지 않느냐』 는 현실론을 제기, 평민당을 포함한 제도권내 정당의합의가 어렵고 따라서 5공청산문제에 더이상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비쳤다.
그는 여권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 평민당이 반발하는 모양을 갖추게해 일정한 명분을 만들어 주는 한편 단독 영수회담 이후 타협적 자세를 보여온 민주·공화당이 중재하는 모양을 상정하는듯 하다.
정호용의원이 4일 『나는 대표라든지 하는 욕심이 없는 사람』 이라면서 『대통령이 물러나라면 물러나겠지만 광주사태를 책임지고 물러낱 순 없다. 내가 물러나지 않는 것이 체제수호와 노대통령을 돕는 길』이라고 확고한 태도를 거듭 천명했다.
정의원의 발언이 김총무와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털고 TK의원들과 화기애애한 술잔을 나눈지 이틀만에 나온 발언이어서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즉 어차피 평민당을 만족시키는 타협안이 나올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하에서 강경파의압력을 받은 당지도부가 일방적 매듭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여권이 이처럼 일방종결을 검토하는 진짜 배경은 백담사측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최근 백담사쪽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은둔상태의 해결을 조속히 시도하지 않는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백담사측에서는 특히 그동안 노정부가 상당히 배려할듯 시사했던 장세동씨 재판에서도 결국 「여론의 압력」 이란 구실로 실형이 내려지는등 사태를 약속위반이라고 성토하고 있다는 것.
이에따라 정부쪽에서는 박철언정무장관을 보내 면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것도 거절되는등 전씨의 불만이 강하게 비쳐지자 당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박대표가 5공청산 종결을 표명한 것도 이러한 백담사측 불만에 대한 진화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민정당측은 무한정 전씨를 백담사에 묶어둘수는 없는데다 야당측은 좀처럼 합의해줄 가능성이 없어 뭔가 최종 결정을 하지않을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 이른것은 사실.
그러나 어느쪽이든 아직은 여론파악용 애드벌룬적 성격이 큰 것이 사실이고 광주보상법을 제정해야할 정기국회때쯤이야 구체적 모습을 띠고 5공청산 마무리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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