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 높인 남북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말복무더위가 막바지 여름의 자락을 붙잡고 기승을 부린 8일 군사정전의 제450차 본회의가 열린 판문점은 분단의 뼈저린 슬픔과 통일이 얼마만큼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케하는 장이었다.
이날 회의는 평소의 관례와는 달리 회의개최를 요청한 공산측이 사전에 토론할 의제를 밝히지도 않은채 열리는 것이어서 유엔군 측에서는 찜찜하기도 했지만 임수경양의 판문점 통과문제가 거론되리라 예상했던 터.
아니나 다를까, 오전11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공산측 대표로 나온 북한의 최의웅소장은 『미군병사들과 프에블로호 선원들도 통과한·이 길을 이땅의 주인인 임양이 넘어서 제집으로 가겠다는데 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 따졌고 유엔군측은 이에대해『남북한간 교류는 국가간에 다룰 문제이지 겅전협정의 토의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양측은 임양의 기자회견과 통일각에서의 농성장면등의 화면이 담긴 비디오까지 들이대며 자기쪽의 주장을 펴나갔다. 화면의 상당부분이 같은 장면이었지만 북한측은 임양의 언행이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한 것이기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한 것이었고 유엔군측은 북한측이 어린 임양을 이용, 정치선전화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의 열기를 더해준것은 회의장 밖 남·북한기자들의 대화. 회의장보다 더 뜨거운 통일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측 기자들은 한결같이 『조국의 통일을 위한 어린 임양의 남향길 마저 정치적 이유로 막히는 것을 보니 가슴아프다』 며 『정부차원에서는 이해가 엇갈려 그렇다치더라도 민간차원에서노력하것 마저 막다니 남한쪽에서는전혀 통일의지가 없는것 같다』고 회의대표보다 한술 더뜨는 주장.
이에 대해 우리측기자들이 『그렇게 민간차원에서의 노력을 높이 산다면 왜 같은 민족이 주최한 올림픽에 북한쪽에서는 임양과 같은 민간차원의 참석자가 없었느냐』 고 다그치자 북측기자들은 『남한이 북한의 공동개최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올림픽을 여는 것에 대해 북한인민 모두가 분개하는데 어찌 임양같은 사람이 나올수 있느냐』 고 얼버무렸다.
말복이라는 절기를 똑같이 입에 담으면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계산된 주장과 논리로 뒤덮인 이번 회의를 취재하며 이념과 체제가 다른우리 민족의 통일이 언제쯤 이룩될까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