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사일 갈등 증폭 남방 3각 공조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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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장관급 대표단 부산에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는 북한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방송 카메라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 등이 대한항공 표시가 적힌 트랩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들이 타고 온 비행기는 북한 국적의 고려항공이다. [부산=송봉근 기자]

11일 오전 8시30분 청와대 비서실 사무동인 여민 1관의 소회의실.

이병완 비서실장이 주재한 일일 상황점검회의에서 수석비서관 등 10여 명이 일본의 선제공격론을 논의하고 있었다. 회의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이 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한 건 올 들어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말없이 논의 결과를 들었다.

"일본의 침략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것… 일본 지도자들의 오만과 망발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청와대의 대일 경고는 이렇게 나왔다.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북.일, 북.미 갈등 속에 신중론을 견지해 온 정부가 일본 정부를 공격하면서 한.일 갈등이 새로 추가되고 있다. 미사일 발사 후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주장해 온 일본은 급기야 차기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 등이 대북 선제 공격론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일본을 공개 비난하고 나선 건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일 갈등이 추가되면서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어색한 모양새로나마 유지되는 듯했던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흐름은 노무현 정부에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취임 후 노 대통령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공조를 축으로 한 전통적 남방외교 대신 신외교 기조를 내걸었다. 이 기조를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표현해 왔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가 한.미.일, 북.중.러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구도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미 동맹이나 한.일 공조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가 될 수 없다. 때로 정부는 대북문제를 푸는 데 있어 전통적인 한.미.일 공조보다 중국의 지렛대론이 더 중요하다고도 여겼다.

하지만 이런 외교 기조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북한이 위협의 주요소가 되자 미.일 동맹과 북.중 동맹이 부각되며 우리 정부의 선택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대북 억지력마저 의심받은 상황에서 중국의 지렛대론에 기댈 수도 없다.

정부가 미사일 발사라는 현실 앞에서 "북한의 도발행위"라는 성격 규정을 내리고서도 "정치적 압박이므로 냉정하게 대응한다"는 이중의 접근법을 택한 건 그만큼 고민이 크다는 방증이다.

1998년 대포동 1호가 발사됐을 때 신속하게 한.미.일 공조의 틀 속에서 대응했던 김대중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으로 비치고 있다.

선제공격론 등 일본의 드라이브가 계속되자 노 대통령은 마침내 침묵을 깼다. 11일 청와대의 대일 경고는 한.미.일 공조로 미사일 문제를 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내보인 셈이다. 그런 만큼 동북아 정세는 더 혼미해지게 됐다.

6자회담이라는 외교 노력이 성공을 거둔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한국의 외교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리로선 북한에 압력을 가하면서도 대화를 해야 하지만 미.일 동맹관계에서 틈을 보이면 북한이 잘못 판단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한.미.일 협의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교 기조는 지금 혹독한 시험을 받고 있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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