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 꼭지 물고 밤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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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제 애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갓난아기들을 위한 일을 하게 돼 행복해요."

젖병을 만지작거리던 김미정(48) 대표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년의 각고 끝에 낳은 '옥동자'를 바라보며 감회에 잠기는 듯 했다. 그가 운영하는 수목베이비월드는 젖병 개발업체다. 독특한 공기유입장치를 단 '매직 젖병'으로 6일 '여성경제인의 날'에 특허청장 표창을 받았다.

원래 약사였다. 한 살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된 그에게 부모는 "안정된 직업이 좋겠다"며 약대 진학을 권했다. 1983년 개인 약국을 차려 월 500만원 정도의 괜찮은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비좁은 약품 조제실에 갇혀 사는 게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94년 지인의 소개로 발을 들인 무역업은 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휘청거렸다.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젖병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약국에서 젖병을 팔 때 엄마들 불평을 자주 들었죠. 젖꼭지가 바짝 달라붙거나 우유가 옆으로 새기 일쑤라는 거예요. 그때마다 '이렇게 만들면 될텐데…' 하는 아이디어를 혼자 떠올리곤 했죠."

젖병 개발에 들어간 건 2002년이다. 네 명의 직원과 밤새 젖병을 빨아가며 시험과 고민을 거듭했다. 두 직원이 마침 잇따라 얻은 갓난아기들을 '실험 대상'으로 허락해 줘 큰 도움이 됐다. 핵심은 적당량의 공기를 젖병에 어떻게 유입시키는가였다. 공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아기가 배앓이를 한다. 공기가 없으면 젖꼭지가 달라붙어 우유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미세한 틈으로 소량의 공기가 들어오게끔 하는 공기유입장치다. 장치와 이어진 관은 공기를 젖병 끝으로 밀어내 아기가 불필요한 공기를 더 이상 들이마시지 않게 한다.

2004년 두 건의 특허를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미국의 유명 젖병회사와 특허 분쟁이 붙은 일이 가장 힘들었다. 특허청은 다행히'매직 젖병'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은 국내 10여 군데 유아용품회사에 젖병을 납품한다. 지난해 매출은 3억원 정도. 욕심을 더 낼 만 하다. 공기유입장치를 유아용 주스 컵에 장착해 상용화하는 일과 좀더 씻기 편한 젖병을 개발하는 일이다.

"저희 제품이 아니면 꼭지를 빨다가 혀로 밀어내는 아기들이 있대요. 새로 태어난 '고객'들이 고마와서라도 계속 노력할께요."

한편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6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제10회 여성경제인의 날 기념식을 열고 우수 여성기업인.근로자 등 56명을 표창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삼양금속의 전옥희 대표가 동탑산업훈장을 탄 것을 비롯해 기계금속 부품업체 아메코의 김경순 대표가 산업포장을 받았다. 삼양금속은 국내 처음 '냉간 성형공법'을 개발해 미 GM 계열 부품회사에 연간 200만여 개의 샤프트를 수출했다. 이밖에 ▶대통령 표창에 문정옥 뉴월드, 심상희 주영크리에이션 대표 ▶국무총리 표창에 이정현 세전예건, 김숙현 임페리얼트레이딩,이훈주 한주광학,문승자 케이제이알텍 대표가 선정됐다.

임미진.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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