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 새 출발 계기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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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5월부터 말도 많던 개각이 기습적으로 단행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사회를 뒤흔든 각종 대형 사건·사고와 집권 세력 내부의 보조불일치를 보거나 이제 1년여의 수습기간을 거친 6공 정권 자체의 재출발 필요성 등으로 보아 지난 5월말께 부터 당정의 쇄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런 쇄신 필요성은 집권층 스스로도 그 동안 인정해왔지만 인사권자의 의중을 거스르는 중구난방의 개편설이 내부에서 터지면서 차일피일 미루어져 봤던 것이다.
이번 안기부장의 경질과 6명의 장관을 바꾼 개각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그 동안의 개편요인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최근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서경원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익환· 임수경 밀입북 사건 등이 연달아 터졌고, 두 달째 끌고 있는 교원 노조 파동, 5월초의 충격적인 동의대 참사, 전대미문의 경찰관 집단 사표, 일련의 심각한 노사 분규 등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을 불안과 비관으로 몰아넣는 엄청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관리·해결할 책임을 진 집권측에서는 국희에서 여당이 찬성해 통과시킨 의보법·노동 관계법 등을 행정부가 거부하는가 하면 아파트 정책과 신도시 건설 등을 둘러싼 사전 정보 누설, 내부 이견 등 무능·무책·혼선이 현저히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잇단 밀입북에서 보게 되는 대북 태세의 허점, 만성적인 치안 무능 사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데 국민적 공감이 형성된 지 오래됐다.
이런 그 동안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개각은 당연한 것이고 그 성격은 한마디로 문책성 개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각으로 그 동안 쌓인 개각 요인이다 반영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가령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을 맞고도 내부 이견과 혼선을 빚으면서 이렇다 할 정책 수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경제 팀에는 개편 요인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벌써 오래 전부터 내부적으로 알력·혼선을 드러내고 있는 여당의 개편과 권력주변의 개편 필요성은 없는 것인가.
원래 인사 개편이란 전임자 보다 반드시 훌륭한 후임자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문제점을 털고 새로 한번 시작한다는 새 출발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더 뜻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개각은 정부가 이 어려운 시기에 새출발을 다짐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폭이 다소 절제됐다는 느낌이다.
이 정도로는 그 동안 울적·불안했던 민심을 일신하기에도, 집권 세력 내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에도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1년 반의 경험 쌓기를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6공 정부다운 국정 운영에 들어가기 위한 팀 정비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개각이 결코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앞으로 다시 적절한 시기를 골라 당정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쇄신할 필요는 남아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새 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번 개각의 원인을 생각하여 소관분야에 대해 보다 책임감 있고 철저한 관리를 하라는 것이다. 대공 업무나 치안에 허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업무를 감당 못하는 책임자는 더 이상 곤란하다.
특히 신임 안기부장은 현대의 정보기관이 당연히 가져야 할 고도의 전문성과 민주화의 새 규범 안에서의 철저한 직업 의식을 우리 안기부도 갖추도록 진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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