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감축론과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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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한 관계가 민감한 단계에 와 있는 현 시점에서 주한 미군 감축 문제가 미국쪽에서 거듭 거론되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 국방성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극동지역 미군 재배치 계획은 물론 한반도와 그 주변에 근 4O년간 군사적 안정을 유지해온 군사력 균형의 기본 틀을 해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전략 의도가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 때에 이 지역의 군사균형을 조금이라도 변경시킬 듯한 기미를 보이는 것은 북한은 물론 반미 감정에 얽매여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일부 과격 세력에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를 보낼까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한 미군 감축은 미국 국내 사정의 필요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여러 경로로 거론될 것이 확실하다. 이에 대응해 우리는 처변부경의 확고한 마음가짐으로 예상되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미리부터 철저히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대응의 첫 단계는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미국은 결코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1천6백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의 압력으로 「부시」행정부는 실질 국방 예산을 동결했다. 미 국방성은 이 예산압박 속에서 종래에 유지해온 해외 군사력 판도를 위축시키지 않고 유지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및 유럽에 배치된 군대의 부분감축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군 철수 논의는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미 해외 주둔군의 역할이 주둔국의 방위를 보완해준다는 전제 아래 미군의 감축을 원치 않는다면 그만큼 미군 유지비를 더 분담하고 자체 방위능력을 높이라고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입장에서도 당분간은 감축이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에 맞 부닥치게 된다. 그 하나는 방위비 분담에 어느 정도 수용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미군감축을 피하는 길이다.
주한 미군의 역할이 대소 군사 견제를 위한 미국 이익수호에 있다는 오랜 고정관념으로는 이 선택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 생각은 싫든 좋든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미소 관계가 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군의 부분 철수에 응하면서 우리의 자체 방위력을 보완해 나가는 선택이다. 자주 국방 확립의 당연한 입장에서 볼 때 이 선택은 원칙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또 이 선택은 언젠가는 미군이 완전 철수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장은 두 가지 선택 모두 우리의 부담 능력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중요한 전제는 남한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우리의 국방력에 조그마한 손상도 가지 않아야 된다는 점이다.
보다 넓은 안목으로는 주한 미군 철수로 생겨날 군사력 공백을 보다가까운 나라들이 메우려들 가능성을 심각히 고려해야 된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커지면서 『일본 방위에 필수적인』한국의 방위에 대부 노릇을 자처하고 나설 가능성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국방 당국은 물론 국민 모두도 주한미군 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바탕으로 냉철히 계산해 선택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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