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카스트로 사후' 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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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47년간 쿠바를 통치하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사진) 국가평의회 의장이 8월 13일이면 80세가 된다. CNN과 로이터통신은 최근 미국이 '카스트로 사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그가 고령인 데다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문이 들리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3년 '민주 쿠바 지원 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동의장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쿠바 출신인 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을 앉혔다. 이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한 CNN은 "보고서는 카스트로 통치 시대가 끝난 후 쿠바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인 방안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5일 발표될 예정이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 사후 쿠바의 임시 정부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해올 것에 대비해 미리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권 이양 작업이 시작되면 2주 안에 기술적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민주주의 선거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 전문가 등 자문위원단도 가능한 한 빨리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민주주의 펀드'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카스트로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돕기 위해서는 통치 말년부터 2년간 8000만 달러가 들 것이라는 계산도 내놨다. 또 쿠바의 독재 체제가 끝나기 전에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200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카스트로 사후 6개월이 쿠바의 민주주의 체제 정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도에 대해 리카르도 알라르콘 쿠바 의회 의장은 "미 정부가 쿠바의 통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비밀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버지니아주의 싱크탱크인 렉싱턴연구소의 필립 피터스 정치분석가는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수십 년간 양국 정부 사이에 대화가 없었던 만큼 쿠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행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카스트로의 후계자로는 그의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75) 현 국방장관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라울 역시 고령이기 때문에 카스트로 비서 출신인 펠리페 페레스 로케 외무장관과 카를로스 라헤 부통령도 거론되고 있다.

카스트로가 집권한 뒤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지난 40여 년간 지속돼온 쿠바 봉쇄 조치의 고삐를 더욱 조여오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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