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롯데마트 생존실험 “지점서 값 정하고 일할 사람 뽑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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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2일 서울 송파구 한국광고문화회관 2층 대회의장에서 롯데마트 전점 점장들과 팀장, 임원 등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앞으로 도입될 현장책임경영 설명회가 진행됐다. 문영표 롯데마트 대표이사(오른쪽)가 설명회 전 직원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12일 서울 송파구 한국광고문화회관 2층 대회의장에서 롯데마트 전점 점장들과 팀장, 임원 등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앞으로 도입될 현장책임경영 설명회가 진행됐다. 문영표 롯데마트 대표이사(오른쪽)가 설명회 전 직원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체인 오퍼레이션(Chain Operation)’ 대폭 축소, 지점별 현장 책임경영도입.

지점장에 전권 ‘책임경영’ 도입 #1인가구, 온라인구매 늘어 위기감 #상권따라 상품·세일도 달라질 듯 #20곳 먼저 해본 뒤 5월 전국 확대

롯데마트가 100년간 굳어진 대형마트(할인점) 경영 원칙에 과감한 수술을 시도한다. 온라인 유통 강자의 매서운 도전, 4인 가구 축소, 소비자 취향 세분화로 오프라인 유통채널에 닥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12일 문영표 롯데마트 대표는 서울 송파구 한국광고문화회관에서 전국 125개 지점장과 본사 팀장 등 200명을 한데 모아 이런 방침을 설명했다. 문 대표가 지난 1월 롯데쇼핑으로 복귀한 뒤 전국 지점장을 모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문 대표는 “오프라인 유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말이 많지만, 우리는 언제나 힘들었고 그 답은 항상 현장에 있었다”며 “현장 주도의 상품과 인력 운영, 예산 집행 등 본사 권한을 대폭 이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현장 책임경영의 핵심은 점포 운영 권한의 상당 부분을 지점장에 넘기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체인스토어, 특히 생활 소비재와 식재료를 취급하는 마트는 본사가 규모의 경제로 싼 가격에 물건을 확보하고 매뉴얼화된 관리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지점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은 파격에 속한다.
어느 점포에서나 같은 환경 속에서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같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체인 오퍼레이션의 강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 패턴이 1인 단위로 세분되고 온라인 채널의 급성장으로 이는 약점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마트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신선식품에서까지 마켓컬리와 같은 온라인 사업자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점점 마트를 찾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롯데마트의 책임 경영 결정은 결국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자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대규모 물량 확보와 운영 매뉴얼 단순화를 통한 비용 절감을 포기하고 대신 현장의 결정을 대폭 수용하면서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막강했던 본사 상품기획자(MD)의 고유 권한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발주와 매장 행사상품 운용 상품 결정에 현장 지점장 목소리가 커진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진열대를 모듈화해 지점장이 필요한 만큼 설치할 수 있고 상품 비율도 지점장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지역에 특화하거나 맞춤형 제품이 늘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필요한 물건이 풍부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근거리에 두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점포 운영 예산과 인사에 대한 권한도 지점장이 갖게 된다. 기존엔 아르바이트 채용까지 점포 요청 이후 본사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현장에 맞는 인재 채용도 알아서 결정한다. 점포가 자체 결정할 수 있는 포상비와 광고판촉비의 비율도 늘리고 신선식품에 대해서는 지점장이 판매가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계획이 정착하면 점포마다 상권에 따라 다른 상품을 내고 각기 다른 세일 전략도 짤 수 있게 된다. 롯데마트는 지역 점포 현지 조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원을 추가 확보하고 조직 구성도 바꾸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다음 달부터 전국 20개 지점을 현장 책임경영 테스트점으로 정해 운영하다 이르면 5월 중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롯데마트가 이런 모험을 시도한 배경엔 심상치 않은 위기감이 작용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2017년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보복에 따른 영업정지로 결국 112개 점포가 철수하면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3600억원 상당의 중간 자금을 투입하며 버텼지만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지난해 실적도 저조하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매출은 6조3170억원에 영업이익 8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엔 최저시급 인상, 전자상거래 지속 성장으로 인한 영업환경 악화 등의 요인으로 판매 관리비가 증가하면서 8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적자 전환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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